작은 길 걸어 하느님께 나아갔던 성녀의 숨결 생생
내·외부 원형 간직한 데레사 성녀 생가 현재 박물관으로
가르멜 수녀원 곳곳도 성녀 손길 닿은 모습 그대로 보존
성녀 기념하기 위한 화려한 장식 오히려 이질감 느껴져
리지외(Lisieux)는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꽤나 유명하다. 이곳이 선교사업의 수호성인인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1873~1897) 고향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성인의 삶과 신앙을 본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일컬어 하느님의 작은 꽃을 뜻하는 ‘소화(小花) 데레사’라고도 한다. 그는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며 매일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작은 길을 통해서도 성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리지외 곳곳에는 데레사와 연관된 장소가 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학교, 마을 성당과 가르멜 수녀원, 성녀를 기리는 박물관과 기념 대성당이 우뚝 서 있어서 이곳이 성녀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레사는 리지외와 멀지 않는 알랑송에서 시계공이었던 아버지 루이 마르탱(Louis Martin, 1823~1894))과 공예사인 어머니 젤리 마르탱(Zelie Martin, 1831~1877)의 아홉 자녀 가운데서 막내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4명의 아이를 유아기에 잃어버린 큰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부부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삶의 첫 자리에 두고 성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와 단식 그리고 주일을 철저히 지켰다. 또한 이웃의 노인과 병자를 방문하고 걸인을 도와주며 이웃 사랑도 꾸준히 실천했다. 부부의 깊은 신앙과 모범적인 삶은 딸들에게 고스란히 내려갔다.
데레사가 네 살 때인 187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은 알랑송을 떠나 외삼촌이 살던 리지외로 이사했다. 그는 언덕 위의 아담한 2층 집에서 수녀회 입회 전까지 11년 간 살았다. 이 집은 1913년 이후부터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봉헌해 준 덕분에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데레사가 살았던 집은 건물의 외부 뿐 아니라 내부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데레사와 가족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전시돼 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후에 언니 두 명도 가르멜회 수녀가 되자 데레사는 외로움과 병고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같은 시련이 어린 데레사에게는 수도성소에 응답하는 계기가 됐다.
데레사는 집 가까이에 있던 성 베드로본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성소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첫 고해성사를 했던 성당 고해소 앞에는 지금도 어린 데레사의 인형을 세워둬 이곳이 데레사의 출신 본당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생가 뒷마당에는 데레사가 아버지에게 수녀원 입회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는 동상이 있다. 막내딸의 애원을 들으며 아버지는 차마 딸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막내딸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수녀원의 허락을 받은 데레사는 15세가 되던 1888년, 언니 수녀가 있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다.
데레사 성녀는 몸이 불편해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완덕에 이르고자 힘썼다. 허약한 가운데서도 9년 동안의 수도생활을 충실히 한 데레사 성녀는 불과 24세였던 1897년 9월 30일,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을 남기고 하느님 아버지 품에 안겼다.
1925년 비오 12세 교황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가꾼 데레사 성녀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더불어 선교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데레사 성녀의 부모도 2015년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부부가 동시에 시성된 사례였다. 한 가정에서 자녀와 부모 등 세 명의 성인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데레사 성녀가 몸담았던 가르멜 수녀원과 부속 건물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성당 왼쪽에는 데레사 성녀 박물관이 자리해 그의 생애와 신앙을 살펴볼 수 있다. 성녀의 손길이 닿은 것이면 작은 것 하나라도 귀하게 여기며 전시하고 있다. 성당 오른쪽 부속 건물에는 작은 경당이 있는데 그곳에 데레사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가르멜 수녀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데레사 기념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이 성당은 데레사가 시성된 직후인 1929년에 공사를 시작해 1954년에 완성했다. 4000명이 들어갈 정도의 규모로 너무 크고 화려하여 낯설게 느껴진다. 대성당 안은 화려한 모자이크와 성녀의 사진으로 빼곡히 장식돼 있다. 이곳의 지하 성당에는 성인품에 오른 데레사의 부모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안타깝게도 작은 길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성녀의 소박한 정신은 대성당 건물에 묻힌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성인이나 신앙 선조를 공경하고 본받기 위해 성지나 유적지를 만들며 꾸미고 있다. 대부분의 성지나 유적지는 처음에 소박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다. 성지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성당을 크게 짓고 이런저런 편의시설도 갖추다 보면 성지의 공간이 건물로 뒤덮이는 경우가 생긴다.
성지나 유적지에 큰 성당이나 부속 건물을 지을 때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 안에서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모든 편의 시설을 다 갖추기 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꼭 필요한 것만 갖추면 그곳에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된다. 그런 곳이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명상의 공간이 된다.
큰 것보다도 좀 작은 것이 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줄 수 있다. 데레사 수녀의 고향인 리지외의 여러 곳을 방문하며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곳은 기념 대성당이 아니었다. 크게 감명을 받은 곳은 어렸을 때 데레사가 살았던 아름다운 집을 꾸며 만든 박물관과 수녀원 부속 건물을 개조해 만든 작은 박물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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