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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내)

죽산성지

by 세포네 201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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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죽산성지를 다녀왔어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 로 불리게 된 순교터       

죽산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이다. 조선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에서 현(縣)으로 강등되기도 몇 차례 있었다. 조선시대 도호부(都護府)가 있을 때에는 그 면적이 상당히 넓어 지금의 안성시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 용인시 원삼면, 백암면 모두를 포함하고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개정에 의해 죽산도호부에서 죽산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안성군으로 편입, 현재의 죽산면으로 개정되었다.
 죽산은 죽산 박씨, 죽산 한씨의 관향이기도 하며,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는 당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친, 유명한 시인 박인량(朴寅亮)의 고향이기도 하며, 몽고군이 침입하였을 때는 송문주(宋文冑)장군이 죽주산성(竹州山成)에서 그들을 물리치고, 또 임진왜란 때는 망암(望菴)변이중(邊以中)이 화포(火砲)를 제작, 왜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 후 병자호란 때는 삼학사의 한 명으로 중국 심양에 잡혀간 오달제(吳達濟)의 고향이요, 정조 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주국(李株國)장군이 태어난 충절의 고장,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특히, 고려 때 오랑캐(몽고)들이 진을 친 곳이라는 이진(夷陣)터가 있으며, 이 곳이 병인박해 때 처형지로 이용됐다. 지금의 성원목장 중심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지금은 목초들만 무성하지만 당시에는 큰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서 있었다고 한다. 잡혀 온 사람들은 죽산관아(현재 죽삼면사무소)감옥에서 이진터로 끌고 가 처형했다고 한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이진터로 끌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여 "잊은 터" 라고 불렸다고 한다.


  삼죽면에는 "둘기"라는 삼거리가 있다. 이 곳에 주막이 있었는데 포졸들이 신자들을 잡아가지고 오다가 이 주막에 들려 술을 마시고 돈을 내라고 심하게 두들겨서 이 마을 이름이 "두둘기"라고 한다고도 전해진다. 또 달리 전하는 말로는 이 곳이 진흙길이라 신발에 많이 달라붙어 진흙을 털어내려고 신발을 두드려 두둘기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처럼 병인박해로 인해 박해의 잔학상의 일면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죽산성지 홈페이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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