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유리화 등 종교적 작품 가득한 복합 문화 공간
프랑스 남부 니스는 지중해 해변에 있는 유명한 휴양 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이곳엔 아름다운 바다와 백사장이 있고, 해변도로에는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며 걷는 사람들이 많다. 연중 온화한 날씨 덕분에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즐겨 찾는다.
많은 예술가들도 이곳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년)다. 그는 말년에 니스 근처의 방스에 있는 도미니코수녀회 부속 건물에 머물면서 ‘방스 로사리오 경당’을 설계했고, 그 안을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채웠다. 그의 유작이기도 한 경당은 전체가 이 시대의 최고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년)도 1950년부터 니스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했다. 샤갈은 1966년에 성경을 소재로 한 작품 17점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니스시가 토지를 제공해 1973년 미술관이 개관된다. 이 미술관은 ‘마르크 샤갈 성경 미술관’(Musée national biblique Marc Chagall) 혹은 ‘마르크 미술관’(Musée Marc Chagall)이라 불린다.
성경 미술관은 나지막한 언덕의 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현대식으로 소박하게 건립됐다. 대지는 넓지 않지만 야외 정원과 수영장, 전시관과 도서관, 공연장과 세미나실 등을 갖춰 미술관뿐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특히 입구의 작은 연못은 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정화하도록 만들어 준다. 연못 뒤편의 벽에는 예언자 엘리야가 불가마를 타고 승천하는 장면이 모자이크로 묘사돼 있다. 성경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천상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유다인 출신인 마르크 샤갈(1887~1985년)은 유다교 및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내용의 작품을 즐겨 그렸는데, 이곳에는 영적이며 종교적인 색채를 띤 것이 많다. 또한 이 미술관에서는 성화뿐 아니라 샤갈의 일반 회화와 석판화, 유리화와 조각, 모자이크 등도 볼 수 있다. 실내 공연장 무대 쪽 샤갈의 유리화에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인간이 푸른빛으로 표현돼 있다. 무대에는 두 대의 피아노가 있는데 하나는 연주용이고, 다른 한 대에는 샤갈의 인간 창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샤갈은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주요 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인간 창조’, ‘노아의 방주’, ‘야곱과 천사의 싸움’, ‘홍해의 기적’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사악을 봉헌하는 아브라함’(1960~1966년)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에 올라가 장작 위에 눕혀 놓았다.(창세기 22,1-19 참조) 이사악의 몸은 이미 사색이 되어 노랗게 뜨고 말았다. 아들을 바쳐야 하는 아브라함의 고통스러운 상태는 검붉은 색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가 겪는 고통의 빛깔은 몸과 얼굴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뿜어져 나와 화면을 붉게 물들인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제물 봉헌을 막는다. 왼쪽의 나무 아래에는 이사악 대신 봉헌할 양이 표현돼 있다. 오른쪽에는 십자가를 진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을 막으셨지만,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되셨다. 샤갈은 아브라함의 제사와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연관시키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니스를 방문한 사람들은 해변에서 육신의 피로를 풀고, 성경 미술관에서 정신의 피로를 풀며 회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은 대도시의 큰 미술관과 달리 작은 휴양 도시에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샤갈 성경 미술관은 우리가 참된 휴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려 주는 듯하다. 참된 휴식은 단순히 지친 몸의 회복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 전부가 회복되어 새로운 활기로 가득할 때 진정한 휴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안의 여러 피정이나 기도 모임은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준다. 또한 다양한 문화 활동도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니스가 더욱 빛나는 것은 그곳의 바다뿐 아니라 샤갈 성경 미술관, 마티스 미술관과 방스 로사리오 경당, 매그 재단 미술관 등 문화 기관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교회 건축 안에도 작은 문화 공간이 있으면 건물은 더욱 빛날 것이다. 그곳에 성화 한 점만 걸어도 좁은 공간은 성경 미술관처럼 성스럽게 변화돼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가정에도 성화 한두 점을 걸어두면 그 공간은 거룩한 장소로 변화돼 우리의 삶을 다독거려 줄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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