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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교회의 보물창고

(28) 샹티이 성의 ‘콩데 미술관’

by 세포네 2017.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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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미술관, 연못과 정원 조화 이룬 복합 문화 공간

 

샹티이 성의 콩데 미술관 전경. 15~19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뛰어난 회화와 조각, 사본과 고서, 판화와 사진 등이 소장돼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41㎞ 떨어진 작은 도시 샹티이(Chantilly)에는 아름다운 성이 있다. 샹티이 성은 1528년부터 1560년 사이에 건립됐으며, 후에 그랑 콩데(Grand Condé)와 후손에게 상속돼 콩데 성이라고도 부른다.

샹티이 성은 중세 이래 귀족이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마지막 소유자였던 앙리 도를레앙(Henri d‘Orléans)이 1897년부터 성과 소장품을 프랑스 학사원에 기증했다. 이를 토대로 콩데 미술관(Musée Condé)이 설립돼 1898년부터 대중들에게 개방됐다. 이곳에는 15~19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뛰어난 회화와 조각, 사본과 고서, 판화와 사진 등이 소장돼 있다. 성에 실제로 거주했던 귀족들의 초상화와 도자기 등 생활가구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콩데 미술관은 기증자의 뜻에 따라 모든 예술품을 외부로 대여하지 않아, 이곳에서만 소장품을 볼 수 있다.

또한 샹티이 성과 미술관, 성을 둘러싼 연못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연못 주변과 정원 곳곳에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두고 편안한 의자를 갖춰,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활기를 되찾도록 도와준다.

라파엘로 작품 ‘로레트의 성모 마리아’.

 

이 미술관에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회화처럼 수준 높은 성화와 일반 작품이 많다. 그 가운데서 보티첼리의 ‘가을’, 라파엘로의 ‘로레트의 성모 마리아’, 사세타의 ‘프란치스코의 신비로운 결혼’, 살바도르 로사의 ‘부활하신 예수님’ 등이 눈에 띈다.

라파엘로가 그린 ‘로레트의 성모 마리아’는 ‘베일의 성모 마리아’라고도 불리는데, 마리아가 얇은 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아기 예수·마리아·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족이 등장하지만,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잠잘 때 덮어주었던 천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린다. 벌레가 아기를 물지 않도록 덮어 준 천이었다. 천을 올리자 잠을 깬 아기 예수가 양팔을 올리고 천을 붙잡으려고 한다. 성가정의 보호자인 요셉은 마리아 뒤에서 이 광경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화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성가족이 우리의 가정처럼 평범하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대부분 부속 도서관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콩데 미술관의 도서관에서는 1500여 점의 사본과 1만2500여 점의 진귀한 도서를 볼 수 있다. 도서관도 전시 공간의 일부로 만들어, 열람과 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 도서관에 소장된 ‘베리 공작의 풍요로운 날들’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채색 사본으로 꼽힌다. 1410년경에 만들어진 이 책에는 국제 고딕 양식으로 그려진 131장면의 아름다운 삽화가 있다. 구텐베르크가 찍은 성경도 소장해 도서관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콩데 미술관의 도서관 내부 모습. 1500여 점의 사본과 1만2500여 점의 진귀한 도서를 볼 수 있다.

 

미술관은 단순히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작품만 소장한 곳이 아니다. 오늘날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복합 문화 공간처럼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고 쉬면서 지적인 호기심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 가운데 하나의 대안이, 정원과 같은 외부 공간을 휴식 장소로 꾸미고 부속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오래된 책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벽돌처럼 활용해 도서관 벽면 전체를 아름다운 공간으로 꾸미기도 한다. 실용성이 사라진 물건이라도 쉽게 버리지 않고, 그곳에 예술성을 담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성물방은 많지만 다양한 서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교회 도서관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교회의 도서관조차도 활성화된 곳은 많지 않다. 성당의 도서관에는 읽을 만한 책이 부족하고, 학교의 도서관을 일반 신자들이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여러 기관에 크고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특히 대성당이나 부속 건물의 한쪽 공간에 오래된 신앙 서적부터 신간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도서관을 꾸밀 수 있다. 굳이 새로 도서관 건물을 짓지 않더라도 기존 건물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교회 도서관을 갖출 수 있다. 교회 기관의 복도 또한 조금만 손질하면 도서관으로 변모될 수 있다. 교회 문화의 활성화는 거창한 건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문화와 관련된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때 조금씩 이루어진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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