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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한 - 성녀 카타리나

by 세포네 201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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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오 바토니, <시에나의 카타리나의 황홀경>, 1743년, 캔버스에 유채, 빌라 구이니지 박물관, 루카,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Caterina da Siena, 1347-1380)는 1347년 이탈리아 시에나의 부유한 가죽 염색업자의 스물다섯의 자녀 중에 막내딸로 태어났다. 성녀는 어린 나이에 그리스도를 위해 동정녀가 될 것을 결심했다. 그 까닭은 그녀가 6살 때 한 도미니코 수도회 교회에서 성인들과 함께 있는 옥좌에 앉은 예수님으로부터 축성을 받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성녀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세에 도미니코 제3회에 입회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가정에서 지내며 복음을 실천하는 수도회였기에 집에서 최소한의 대화를 나누며, 기도와 단식하며 지냈다. 이때부터 성녀는 그리스도와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와 악마적인 환시도 일어났다고 한다. 기도생활 3년이 지난 후, 1370년에 성녀는 집에서 나와 병원의 환자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설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기에,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20세 때 이미 성녀의 영적 능력은 높은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 무렵 성녀는 영적 체험으로 그리스도와 신비의 결혼식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화가들은 아기예수가 성녀 카타리나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을 많이 그렸다. 성녀 카타리나의 ‘그리스도와 신비의 결혼식’ 만큼이나 자주 그려진 주제는 성녀의 황홀경에 빠진 장면이다.
이탈리아 화가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 1708-1787)가 그린 황홀경에 빠진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베르니니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황홀경 장면을 제작한 것처럼 로마 바로크 미술의 성인 도상(圖像)에서 영향을 받았다. 1375년에 성녀 카타리나가 피사의 성녀 카타리나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오상 성흔을 받았다. 도미니코 수도복을 입은 성녀 카타리나는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으로부터 오상을 받고 있다. 예수님의 상처로부터 쏟아지는 빛줄기는 성녀의 손과 가슴, 발에 각각 이어진다. 성녀의 양손에는 작은 성흔이 새겨져있다. 거룩한 빛에 성녀는 몸을 혼자 가눌 수 없었고, 하늘에서 두 명의 천사는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 성녀 아래 작은 아기천사는 시에나의 젊은 여인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있다. 왼쪽에 서 있는 천사는 손에 가시관을 든 채 우리를 성녀의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가시관은 성녀의 것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온전히 따르는 성녀 카타리나를 의미한다. 성녀가 오상을 받았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는 네게 지식과 웅변의 은 혜를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위정자와 지도자들에게 내 소망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성녀는 당시 치열했던 교회의 분열을 종식하는데 기여했다.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국 군주와 고위 성직자들을 방문하며 대립과 갈등 상황을 조율하여 평화를 유지하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오 9세를 설득하여 아비뇽 유수에서 벗어나 로마로 돌아오도록 했으며, 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당신께서 제 안에 창조하신 외적이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하소서. 저로 하여금 당신의 모상 안에서 쉬고 당신의 모상으로 살기 위하여, 나의 지친 마음과 영혼을 부드럽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기도 중)


축 일 4월 29일
수호성인 간호사
상 징 십자가, 백합, 책, 도미니코 수도회 복장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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