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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성 안셀모

by 세포네 2017.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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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피에르 프란체스코 포스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1544-46, 목판에 유채, 토리잔니 경당, 산토 스피리토 성당, 피렌체

 

 

 스콜라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성 안셀모(Anselmo, 1033-1109) 1033년에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아오스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은 성인은 15살에 베네딕토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신 후, 1060년에 노르망디 벡(Bek)이란 지방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하여 엄격한 수련과 함께 학문 연구에 힘썼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 교장이 된 성인은 비상한 총명과 수단으로써 전 수도원을 다스리며 많은 저술을 남기며 종교 교육에 노력하여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성 안셀모의 박학과 성덕에 대한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학생이 수도원에 몰려들었다. 그의 명성은 영국까지 전해졌고, 1093년에 영국 왕 윌리엄 2세는 성 안셀모를 영국의 남부도시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성인은 왕의 교회 직무 관여에 반발하여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고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중병으로 한 달 동안 음식조차 먹지 못했던 성인은 110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포스키(Pier Francesco Foschi,1502-1567)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모습을 네명의 성인과 함께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서는 성부께서 마리아에게 순결을 상징하는 푸른색 망토로 어깨를 감싸려 하고, 네 명의 천사는 마리아를 보호하듯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두 천사가 들고 있는 종이 띠에는 원죄 없이 잉태된 마리아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지상에는 네 명의 중요한 교회 학자가 각자 마리아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왼쪽부터 은수자의 모습을 한 성 예로니모, 주교 복장을 하고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복장에 왼손을 들어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는 성 안셀모, 흰색 수도복을 입고 마리아를 쳐다보고 있는 성 베르나르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와 동정성에 관해서 이견을 보이며 각자의 주장을 논하는 중이다

 왼쪽 성 예로니모는 아담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담은 인간의 노동을 상기시키는 괭이 위에 발을 올리고 무화과 잎이 깔린 바닥에 누워 있다. 성 예로니모는 “하와를 통해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지만,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생명이 들어왔다.”라고 말하였다. 성 바오로는 “한 사람(아담)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생명이 들어왔다.”라고 말하면서 아담은 그리스도의 예형(豫形)이라고 말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하와와 마리아를 비교하고 대비한 것이다

 성 예로니모를 바라보는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명예를 위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는 그 어떠한 죄도 침범할 수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반면, 성 안셀모와 성 베르나르도는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마땅히 원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했지만, 나중에 모태에서 정화되어 원죄가 사해졌다고 보았다성 안셀모는 성자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며, 『동정녀 잉태론』(De Conceptu Virginali)과 같은 책을 출간하여 마리아론에 크게 공헌했다. , ‘마리아는 성부와 같으신 성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있는 어떤 존재들보다 더욱 순결하고 티 없이 깨끗하며 공경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오, 하느님이시여, 비오니,
내가 당신을 즐기도록 당신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성 안셀모 주교의 『프로스로기온』 에서

 

윤인복 소화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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