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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실내악 100선

실내악 100선 [79] 루빈스타인 / 피아노 3중주 3번 Bb 장조

by 세포네 201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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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ano Trio No.3 in B flat major, Op.52
               루빈스타인 / 피아노 3중주 3번 Bb 장조
               Anton Grigoryevich Rubinstein 1829~1894 

 
 

루빈스타인 (Anton Grigoryevich Rubinstein, 1829.11.28~1894.11.20)
러시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유대인이다·안톤 루빈스타인의 이름은 19세기의 러시아 음악사상 빼놓을수 없는 위대한 존재이다. 리스트의 계통에 속하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자, 러시아 음악 협회,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의 설립자로서 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러시아에 이식한 공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단지 작곡가로서의 그는 모든 분야에 걸친 수많은 작품을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전해질 정도의 걸작은 그다지 남기지 못했다. 그 스타일이 당시의 국민악파와는 정반대의 이른바 유럽파의 그것이었으며, 특히 멘델스존의 아류라고 불리는 독일 음악의 전통적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 그것은 그가 폴란드계의 유대인과 독일계의 유대인을 양친으로 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피아노 작품으로는 5곡의 협주곡, 4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하여, 소품이 다수 있으나 오늘날 흔히 연주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1835년 아버지는 모스크바에 조그마한 공장을 열었고, 그해 동생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태어났다. 루빈스타인 형제는 어머니와 알렉산드르 빌로잉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839년 처음 연주회를 열었으며, 다음 해 알렉산드르 빌로잉과 함께 3년 동안 해외연주여행을 했다. 파리·런던·네덜란드·독일·스웨덴에서 연주하며 쇼팽과 리스트의 주목을 받았다. 안톤 루빈스타인은 1844~46년 동생 니콜라이 루빈스타인과 함께 베를린에서 음악이론을 배운 뒤 이어 혼자 2년을 주로 빈에 남아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1948년 러시아로 돌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하여, 첫 오페라 〈드미트리 돈스코이 Dmitry Donskoy〉를 작곡했다. 185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두 오페라 〈어리석은 왕 폼카 Fomka durachok〉와 〈시베리아 사냥꾼 Sibirskiye okhotniki〉을 공연했으며, 1854~58년 동안 해외에서 활동했다.이어 1859년 엘레나 파블로브나 공작부인 후원으로 러시아 음악협회를 조직했고 후에 이 협회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1862년 왕립(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동생 니콜라이도 1866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세우고 1881년 죽을 때까지 원장으로 있었다. 안톤 루빈스타인은 1867년 원장직을 사임했다가 1887년부터 다시 맡아 1891년까지 있었다. 1871~72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이듬해 미국을 여행했다. 오페라로는 〈악마 Demon〉(1875, 상트페테르부르크)·〈마카베스 Der Makkabaer〉(1875, 베를린)·〈상인 칼라시니코프 Kupets Kalashnikov〉(1880,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악마〉와 〈마카베스〉에는 그의 유대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6개의 교향곡과 오라토리오 〈바벨탑 Der Turm zu Babel〉(1870, 쾨니히스베르크), 5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곡, 피아노 소품 등과 많은 실내악 등을 남겼다. 1889년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이것을 1890년 A. 델라노가 〈안톤 루빈스타인 자서전 Autobiography of Anton Rubinstein〉으로 영역했다.

I. Allegro
II. Adagio
III. Presto
IV. Allegro appassion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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