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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특집

걷기의 영성

by 세포네 2012. 6. 17.
걷기, 두 발로 봉헌하는 기도이자 비움의 영적 여정

저마다 길에 오른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또 어떤 사람은 걷는 동안만큼은 자유롭고 행복하다며 둘레길, 올레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걷기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 의사들이 고혈압ㆍ당뇨병ㆍ고지혈증ㆍ우울증 환자에게 빼놓지 않고 권하는 게 걷기다. 동의보감에서도 "약보(藥補) 보다는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 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낫다)며 걷기를 최고의 건강법으로 친다.

▲ 그리스도인에게 걷기는 두 발로 봉헌하는 순례의 기도이자 비움의 영적 여정이다. 사진은 강원도 강릉 바우길 제10구간 심스테파노 길을 걷고 있는 강릉 임당동본당 신자들.  평화신문 자료사진

#걷기본능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인간은 사냥을 하건 여행을 하건, 전쟁터에 나가건 태초부터 두발로 꼿꼿이 걸어 이동했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직립보행에서 인류문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두발만으로 이동이 가능해지자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수천가지 동작이 가능한 두 손으로 오늘날 문명을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마(牛馬)와 자동차가 등장하면서부터 인간은 직립보행 능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삶과 역사의 현장이자 기억물인 길도 덩달아 사라졌다. 특히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도시의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3보 이상 걸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준다. 인간은 하루 평균 3만 보 이상을 걸었지만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현대 도시인들은 기껏해야 1000보 걷는다. 이동이 편리하고 신속할수록 인간은 걷기본능을 잃어간다.

 웰빙 바람을 타고 불어온 우리 사회의 걷기열풍은 어쩌면 생존 본능의 작동일지도 모른다. 도시문명의 편리성에 기댈수록 살이 찌고, 병이 생기고, 정신이 복잡해지자 살아남으려면 잠시라도 벗어나서 비워야 한다는 절박감에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사실 걷기열풍은 신체 건강보다 정신 건강의 '적신호' 때문에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800㎞ 카미노 데 산티아고(길)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슬픔, 고통, 구원, 자유라는 심리적 화두를 품고 걷는다. 건강 증진을 위해 그 고행길에 나서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걷기는 도시의 불빛에 가려지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속도경쟁에 지쳐버린 '나'를 회복하는 여행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는 저서 「걷기 예찬」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기는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간다."

 걷기의 또 다른 묘미는 고은 시인이 얘기한 '그 꽃'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여유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현대인들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서로 먼저 정상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는 사이에 사랑이건 가족이건 자아건 소중한 것을 간과하기 일쑤다. 용케 정상을 밟았다하더라도 그 성취는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또 정상에서 기뻐할 수만도 없다. 내일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브르통은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과 사물의 떨림이 되살아나 '그 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간단한 산책이라도 걷기는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걱정을 잠시 멈추게 한다.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극도의 목마름을 통해서 그대는 비로소 잎사귀 밑에 가려 있던 딸기의 맛을 알고, 그대 마음속의 두려움을 통해서 비로소 교회와 그 서늘한 그늘을 안다."

 물론 걷기는 한없이 지루하고 고독한 여행이다. 그러나 브르통은 "내가 혼자일 적만큼 덜 외로운 때는 없다"는 어느 여행자의 충만한 고독을 전하며 길에 오르라고 말한다. 개중에는 오늘날처럼 속도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1시간에 고작 4㎞ 걷는 건 원시적 이동방법이라며 시간 타령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 비하면 수명이 괄목할 만큼 늘어나고, 기계문명 덕에 노동시간이 대폭 줄었는데도 영적 건강에 쓸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건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걷기, 천상 본향을 향한 순례

 걷기의 장점은 무수히 많다. 특별히 신앙인에게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요한 14,6)를 따르는 순례라는 은총이 하나 더 붙는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 나라, 즉 천상 본향(本鄕)을 향해 쉼 없이 걸은 도보 순례자의 원형이자 모델이다. 예수는 가족과 함께 매년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했다(루카 2,41). 공생활 중에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요한 11,55-56). 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이 고을 저 고을 찾아 다녔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은 골고타 언덕길 역시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해 걷는 예정된 순례길이었다.

 「순례 영성」의 저자 까를로 마짜 신부는 "순례란 걷는다는 구체적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의 모범이신 '순례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내ㆍ외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에게 도보 순례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아브라함은 백성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야영을 하며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갔다. 수백 년 후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년 동안 사막을 걷고, 또 그곳에 머물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걷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지상에선 왕국을 세울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치욕을 함께 짊어집시다.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히브 13,12-14).

 이런 의미에서 순례자는 세속적 삶의 안주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는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지평선 너머의 그 어떤 목표를 향해 걷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은 그 목표를 향해 걸으라고 재촉하신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고 옛길을 물어보아라. 좋은 길이 어디냐고 물어 그 길을 걷고 너희 영혼이 쉴 곳을 찾아라"(예레 6,16).

 올 여름 도보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는 본당들이 많다. 청년 사목자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은 걷기구간을 정하고, 사전답사를 다녀오는 등 두 발로 봉헌하는 기도 대장정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신앙선조의 기도소리와 피의 순교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길을 걸을 것이다. 길 위에서 지평선 너머 천상 본향을 내다보며 '나'를 찾고, 삶의 길을 물을 것이다.

▲ 배티성지-연풍성지 구간 총 84.6㎞

▨ 전국 주요 도보성지순례 코스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서소문순교성지-용산 당고개순교성지-절두산 순교성지(15㎞)
 ▶의정부교구: 의정부주교좌성당-순교자 황사영의 묘, 성 남종삼 묘역-순교자 황사영 묘 등
 ▶청주교구: 배티성지-백곡공소-진천성당-증평성당-괴산성당-연풍성지(84.6㎞)
 ▶대전교구: 솔뫼-합덕-신리-여사울성지(15.6㎞)
 ▶수원교구: 단내성지-양지성지-은이공소-미리내성지(35㎞)
 ▶춘천교구: 양양 성클라라수도원-양양성당(12㎞)
 ▶전주교구: 천호성지-여산-나바위-초남이성지 등 아름다운 순례길(250㎞)
 ▶대구대교구: 신나무골-신동성당 묘지-동명성당-신원사-한티 순교성지(24.5㎞)
 ▶부산교구: 수영 장대골순교성지-오륜대순교자기념관(14.7㎞)
 ▶제주교구: 올레길 제2코스(성산포성당 매괴동산), 11코스(정난주 마리아 묘소), 13코스(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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