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구약의 두 인물을 거명합니다.
솔로몬과 요나입니다.
솔로몬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혜’하면 솔로몬의 지혜라고 할 정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지혜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겸손할 때는 하느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귀영화를 맛보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한 다음부터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영적인 지혜를 잃었습니다.
지혜에는 두 가지 지혜가 있습니다.
경험적인 지혜가 있고 영감(Inspiration)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지혜가 있고 영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경험적이고 세속적인 지혜는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는 지혜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은 가르쳐주지만
솔로몬처럼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이에 비해 영적인 지혜는
이 세상에서 바보가 되고 패배자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런데 바보의 지혜,
패배자의 지혜가 바로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그 어리석음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얻는 진정한 지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솔로몬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요나도 대단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을 임금에서부터
철부지까지 모두 회개하게 했습니다.
회개가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고백하건데 저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
30년 넘게 수도자, 성직자로 살면서
한 사람도 회개시키지 못했는데
요나는 니네베 사람을 한꺼번에
다 회개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이
요나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잘난 체 하시는 것입니까?
요나보다 더 많이 회개시켰다고 자랑하시는 것입니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유치찬란한 것이겠지요.
주님께서 요나보다 더 위대하시다 함은
요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다
고래뱃속에 3주야를 지낸 다음
어쩔 수 없이 회개를 선포하여 사람들을 회개시켰지만
끝까지 작은 고통 때문에 하느님께 불평을 하고
제가 봤을 때는 끝까지 자신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이 되시어
고래뱃속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 자신이 죽으시고 묻히신 다음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저를 생각해봅니다.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쉽습니다.
제가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죄에 대해서 제가 죽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삶을 마치면서
주님께서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주셨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고
실제로 온 생애에 걸쳐 회개를 살아
참으로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
제 2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는데
저는 아직 회개의 시작도 못했거나
회개의 시작을 하느님께서 하게 해주셨지만
그 회개에 항구하지 못했거나 한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회개생활에 대해서 길게 권고한 후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이것들을 실행하며 끝 날까지 항구 하는 모든 남녀들에게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하실 것이고
그들을 당신의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 됩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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