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몇 년 전 무전 순례를 떠날 때
침낭 하나만 가지고 떠났습니다.
아직 5월이라 다른 것은 안 가져가도
혹 노숙을 하게 될 경우 덮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노숙을 하게 될 때는 정말로 요긴하게 잘 썼습니다.
그러나 그 침낭을 들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릅니다.
이번 외국 여행을 할 때 컴퓨터를 가지고 갔습니다.
짐을 꾸리면서 휴대전화니
다른 것들은 미련이 없이 두고 떠났는데
컴퓨터만은 많이 망설이다 결국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 무게만큼이나 여행 내내
얼마나 저를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는 길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지고 다니면
고생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니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새로움을 위해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것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손은 한 손입니다.
두 개의 손일지라도 결국 한 손에 하나입니다.
하나를 들고 있으면 다른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기 위해서는
영락없이 가지고 있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때그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니 이것을 굳게 믿는 사람은
아무 것도 지닐 필요가 없습니다.
버리고 떠나는 또 다른 이유는
산뜻한 출발을 위해서입니다.
산뜻한 출발을 위해서는
구질구질하게 이것저것 가지지 말아야하는데
그중에서도 구질구질한 지난 감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원망,
분노,
후회,
아쉬움.
이런 것을 가지고는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을 볼 수 없고
이파리에 색칠을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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