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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겸손하기 위해선 용기가...

by 세포네 2009. 8. 11.


 

 

 

 


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건넸지요.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초라한 곳에서 일거리를 필요로 했던 화가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은 모나리자였지요.

이 일화를 통해, 교만한 화가에게서는 아름다운 것이 나오지 않고 겸손한 화가로부터 유명한 명작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쓰시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겸손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겸손하기 위해서 무슨 용기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겸손보다는 교만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 겸손하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힘든 용기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그 겸손의 모범을 어린이들에게서 발견하라고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으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굳어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어린이를 받아들이고 어린이를 따라 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즉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긴 참 스승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래서 공자도 자신을 포함하여 세 사람이 모이면 두 사람은 스승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왼쪽에 있는 나쁜 사람을 보고 따라하지 않으면 그가 스승이요, 오른쪽에 있는 좋은 사람을 보고 따라할 수 있으면 그도 스승이라고 했지요. 결국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세상 도처에 있는 위대한 스승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우리들이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는 것임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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