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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타볼 산에서, 문수봉에서

by 세포네 2009. 8. 6.


 

 

 

 


        제가 타볼 산을 처음 올라 간 것은 10여 년 전일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체험이 없었더라도
        베드로가 천막치고 계속 거기서 살자고 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요 며칠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밤 등산을 한 번 더 가야지 생각했는데
        어제 예수님의 변모 축일을 기해
        타볼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북한산 밤 등반을 하였습니다.

        저녁기도를 마치고 출발하여 부지런히 오르니
        8시 40분에 목적지 문수봉에 도착하였습니다.
        사 간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고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저는 늘 하던 대로 하늘을 보고 누웠습니다.
        화려하고 환상적인 야경의 서울이 저 아래에 있고
        달은 가을이나 겨울과 달리

        높이 있지 않고 친구처럼 옆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상쾌한 바람까지 너무도 좋았습니다.

        제가 여름 밤 등산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바람이 상쾌하여
        하늘 감상을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으면 더워 아무 것도 못하고 짜증만 날 뿐인데
        등산을 하면 땀 한 번 흠뻑 흘리고 난 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봄이나 가을에도
        산꼭대기 바람은 너무도 차 산 위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는데
        여름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여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자기도 모르게 속을 내보이듯
        저도 너무 좋아 “아 좋다!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속의 생각을 입술로 토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요 화근이었습니다.
        찰나적 영원으로,
        아니 영원한 순간으로 그 좋음을 누렸으면 계속 누렸을 것을
        계속 더 누리기를 바라고 그것을 입술로 토해내기까지 하자
        하느님의 심술이 발동을 하였습니다.

        평택 쌍용 자동차 사태가 그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은
        전기도 끊기고 물도 끊긴 상태에서
        먹고 살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산 위에서 좋음을 즐기고,
        이 정도로 부족하여 더 즐기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와 앉았습니다.
        밀쳐내려고 해도 그 생각이 나가지 않고
        얼른 산을 내려가라고 다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달려가지는 못해도

        적어도 희희낙락하지는 말라는 것.

        늘 그러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에 머무르려 하는데
        주님은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오신 주님은
        타볼 산에서 해골 산으로 가시며
        당신을 따라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에서
        수난을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가 옮아가라고 재촉하십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는

        수요일 영광의 신비 묵주 기도를 바쳤는데
        내려 올 때는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내려왔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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