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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바오로서간해설

(64) 에페소서가 ‘차명서간’이라는 주장들

by 세포네 2009. 6. 14.

<편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전통적으로 바오로에 의해 쓰여진 친서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이 서간이 에페소서 1장 1절과 3장 1절에 분명히 바오로 자신에 의해서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옹의 주교인 이레네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클레멘스 역시 에페소서를 바오로의 친서로 인정하였다. 특히 이레네우스는 처음으로 이 서간을 “에페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에라스무스가 에페소서의 바오로 친저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논거들을 들어 에페소서는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고 차명서간이라는 주장을 폈다.

첫째, 에페소서 1장 1절에는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신자들에게 이 서간을 써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 사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본인 200년경의 ‘체스터 비티’(The Chester Beatty) 파피루스와 4세기의 위대한 사본인 시나이사본과 바티칸 사본 그리고 그 이외의 권위있는 사본들에는 1장 1절의 “에페소에 있는” 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서간은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1장 1절에 나오는 “에페소에 있는” 이라는 말과 서간의 명칭을 제외하면 서간의 내용상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라고 말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게 된다.

둘째, 에페소서에 나오는 언어와 문체가 로마서 갈라티아서 코린토서와 같은 바오로의 다른 주요 서간들과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에페소서에는 바오로가 다른 서간들에서 사용하지 않은 낱말들이 많이 나온다. 에페소서에 나오는 낱말들은 대체로 신약성경에서 비교적 후대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문헌과 신약 이후에 나온 문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에 바오로가 다른 서간들에서 자주 사용한 낱말들과 표현들이 에페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셋째, 에페소서에 나오는 사상과 신학이 바오로의 다른 서간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에페소서에서 강조하는 신학은 바오로가 핵심으로 삼았던 “십자가의 신학” 보다는 “영광의 신학”이다. 그리고 바오로가 매우 강조한 그리스도의 재림임박사상이 에페소서에선 별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

넷째, 바오로는 편지를 쓸 때면, 머리말과 맺음말에서 보통 안부 인사를 전해 달라는 친지들의 이름을 거론하는데 에페소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에페소서에서 유일하게 소개된 인물은 콜로새서에서처럼 바오로의 동향을 알려주고 간 타키코스(에페 6,21-22 콜로 4,17)뿐이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3년가량 머물렀다는 사도행전 20장 31절(사도 19,10 참조)의 말씀을 감안할 때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에페소서에서는 이곳을 다녀간 바오로의 개인적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섯째, 에페소서 1장 15절에 의하면 바오로가 주 예수님에 대한 에페소 신자들의 믿음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또한 3장 2절에선 신자들이 하느님께서 바오로에게 주신 은총과 직무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3장 7-13절은 바오로가 자신의 직무에 관하여 신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보도한다. 이런 보도들에 의하면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 신자들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인상을 풍기는데, 이는 바오로가 에페소 신자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도행전과 친서에 나타난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씀들이라 하겠다.

여섯째, 에페소서 2장 14절에 따르면 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의 적개심이 허물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바오로가 활동할 당시에는 아직 두 민족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은 이런 근거들을 들어 에페소서는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 바오로의 학파에 속하는 어느 그리스도인이 서기 90~100년경 바오로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의 여러 교회에 보낸 차명서간으로 보고 있다. 비록 에페소서가 바오로의 친서는 아닐지라도 친서와 비교해서 결코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매우 값진 서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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