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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50일 '천주교의 날'

by 세포네 2008. 4. 13.

"물은 물길을 따라 흘러야 합니다"

▲ 철새떼가 사라진 을숙도에서 '생명의 강, 그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안승길 신부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


   "살려느냐?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20 참조).

 700㎞, 1750리에 이르는 '생명 평화 순례' 발길이 1일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닿았다. 2월 12일 영하 15도 혹한을 뚫고 한강 하구 애기봉전망대를 떠나온 지 꼭 50일 만이다.

 '마음의 때를 벗고 햇빛으로 몸 씻으며' 생태적 회심을 통해 뭇 생명을 섬기려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 걸은 그 지난했던 순례 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단장 이필완 목사) 순례단 20여 명은 한강을 따라 여주와 충주를 지나고 문경새재를 거쳐 문경과 구미, 왜관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을 따라 강물 흐르듯 흘러왔다. 그 사이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인과 시민들이 연인원 1만 명이 함께했다.


   #갈대숲도 사라져가는 을숙도

 먹물과도 같은 검은 하수가 흘러드는 강가에서, 파헤쳐진 금빛모래에서 때로는 눈물로, 때론 참회의 기도로, 때론 침묵과 묵언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으로 벗을 삼으며 걸어온 순례 여정은 '물은 물길을 따라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결국 '대운하 구상은 한반도의 대재앙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모아졌다.

 순례여정에 함께한 박남준(51) 시인의 시 '운하 이후'는 이번 순례 여정에서 모두가 즐겨 낭송하는 애송시로 떠올랐다.

 "나도 흐르는 강물이고 싶다/반짝이는 모래사장과 때로 여울로 굽이치며/노래하는 강물이고 싶다/새들 날아오르고 내 몸의 실핏줄마다 거슬러 오르는/물고기 떼들의 힘찬 지느러미 소리 귀 기울이는 강물이고 싶다/강물이고 싶다 농부들의 논과 밭에 젖줄을 물리며/푸른 생명을 키워내는 어미의 강물이고 싶다…"

 '철새들의 천국'이던, 하지만 이젠 갈대 숲이 사라져가는 을숙도에 모여든 종교인들은 이날 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진 을숙도문화회관 야외공연장에서 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권경렬 신부)와 천주교 창조보전전국모임(회장 조대현 신부)이 주관해 '생명의 강, 그 평화를 기원'하려는 지향으로 봉헌된 미사였다.

 안승길(원주교구 부론본당 주임) 신부가 주례하고 각 교구 사제단 40여 명이 공동집전한 미사에는 500여 명의 신자들과 여러 종교인들이 참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우리 땅 생태계의 아픔을 거듭 확인하며 대운하 건설 반대운동을 범국민적, 범지구적 생명평화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갈 것을 다짐했다.

 '생명의 강을 향한 보편지향기도'에선 무명의 강에 무수한 생명이 평화롭게 깃들기를 하느님께 청했다.

 순례에 함께한 김규봉(의정부교구 농촌환경사목 전담) 신부는 "생명의 강을 콘크리트로 막고 도배질해 수로를 낸다니 도무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질 않는다"며 "운하 백지화는 하느님 보시기에 분명 옳은 길이기에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수도자들이 하느님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간절하게 바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은 창조질서 보전

 미사 후 천주교 창조보전전국모임 등 종교인들은 '인간의 무지와 교만이 빚어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신앙은 창조질서의 보전"이라고 못박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하느님 창조와 구원계획에 저항하는 무서운 죄악"이라고 규정했다.

 생명의 강을 향한 순례는 행복한 여정이었지만, 동시에 오염된 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할 땐 한없이 절망에 빠져드는 여정이었다고 순례단은 고백했다.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에서 을숙도에 이르는 이날 50일째 순례를 함께한 신건수(크레센시아,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수녀는 "부산에 살면서도 자연과 강, 갈대와 온갖 생명을 예사로 지나쳤는데 오늘은 강을 살려야 하고, 우리 모두 강 살리기 주인이 돼야 하고, 우리 후손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을 뼛속깊이 느낀 하루였다"고 털어놓았다.

 몇몇 구간 순례에 함께한 최종수(전주교구 팔복본당 주임) 신부도 "강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인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긴 순례였다"며 "우리 시대 신앙인이라면 더불어 잘 살기 위해 강을 살려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고 순례 소감을 전했다.

 '천주교의 날' 미사를 봉헌한 신자들과 여러 종교인들은 곧바로 부산 민족예술인총연합 주관으로 생명순례 부산문화한마당에 함께하며 대운하 백지화에 뜻을 모았다. 마당굿패 '파루'의 모듬북 공연으로 막을 올린 문화행사는 부산 민족미술협회원 김영아씨의 '생명의 강을 살리기 위한 퍼포먼스', 서정원ㆍ강은교(클라라)ㆍ박남준 시인 등의 시 낭송, 임현미 춤꾼의 '생명살림 춤' 공연, 가수 김원중씨의 노래 공연 차례로 이어졌다.

 생명의 강을 향한 순례는 그러나 낙동강 하구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남평야를 가로지르는 영산강과 개발의 상흔이 완연한 새만금, 그리고 백제와 충청의 혈맥 '금강'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긴 여정이 다시 막을 올린다. 순례단은 다시 길 위에 선다. 생명의 강이 부활할 그날을, 대운하가 백지화될 그날을 향해….
오세택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

▲ 강은교(글라라) 시인

 

 #국토에 바치는 시
                                    강은교(글라라)

 그대는 희망
 왼 나라 산기슭이란 산기슭, 걸어 돌아 다니다가
 결코 닿지 않는 벼랑 되어 철쭉꽃 품다가
 이마 내민 벼랑의 분홍 뺨
 오솔길이다가
 속눈썹 내리까는 별 몇
 저희들끼리 소곤소곤대는 곳이다가
 소곤소곤대며 까르르 속웃음 굽이치는 곳이다가
 
 무지개, 향내나는 날개로 오르는 하늘이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길 보여주는 수풀이다가
 먼 수풀의 보이지 않는 들꽃 머리칼이다가
 
 결국 결국 희망이다가
 
 그대 국토여, 님이여
 수만 그 여자 허리 아래 누운
 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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