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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르포] 태안 바닷가 돌쨍이의 부활 노래

by 세포네 2008. 3. 30.

"[르포] 태안 바닷가 돌쨍이의 부활 노래 "

 

▲ "바다와 제 친구들은 아직도 많이 아파요" 충남 태안군 모항2리 해안가 갯바위에 올라온 돌쨍이(작은 게).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안녕허셔유. 지는 충남 태안 바닷가에 사는 '돌쨍이'라고 하는구먼유. 한 말씀 드릴려고 잠깐 위로 올라왔시유(신문에서는 표준어 쓰라구요? 알었시유)

 돌쨍이를 처음 본다구요? 섭섭하네요. 서해안 갯바위 틈과 얕은 물에서 주로 사는데…. 서남해 어민들은 돌 밑에 사는 몸집 작은 녀석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러요.

 요즘이야 사람들 입이 고급이 돼서 꽃게나 대게 같은 녀석들만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이래 봬도 인기가 괜찮았다고요. 입맛 없을 때 냄비에 굵은 소금 뿌려 볶거나, 된장찌개에 서너 마리 풍덩 집어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맛이 '끝내줘요'.

   그나저나 저는 이번 겨울에 거의 죽다 살아났어요. 지난해 12월 7일 아침, 저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때문이지 왜 겠어요.

 그날 늦은 밤부터 시커먼 기름 덩어리가 해안으로 꾸역꾸역 밀려 드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더라고요. 기름 덩어리는 끝도 없이 밀려오고, 역겨운 악취 때문에 숨은 막히고… .

 동작 날쌘 저와 몇몇 친구들은 필사의 심야 탈출극을 벌여 용케 바위로 기어 올라가 목숨을 건졌어요. 기름 범벅이 된 우리는 무서워서 밤새 바위에 매달려 떨었어요.

 날이 밝자 기름에 둥둥 떠있는 친구들 주검이 시야에 들어왔어요. 너무 기가 막히고 슬퍼서 바위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답니다. 동작 굼뜬 소꿉 친구들, 해삼ㆍ전복ㆍ소라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어요. 옆으로 걷는다고 저를 놀려대던 물고기들도 배를 허옇게 드러내고 죽었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친구들 중에도 시름시름 앓는 애들이 많아요. 멀쩡해 보이는 염통성게는 가시를 살짝 건드려도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요. 미역과 다시마는 끙끙 앓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태안 바다는 예로부터 "따든, 줍든, 긁든, 캐든, 잡든 언제나 풍성하다"고 했던 바다입니다. 몇 사람의 안전 불감증이 풍요로운 우리 동네를 무참히 파괴했어요. 어처구니 없는 인재(人災)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상보다 회복 속도가 빠른 점이예요.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던 해안가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요. 보세요. 제가 올라 서 있는 이 바위도 깨끗하죠? 친구들도 "이제 좀 살 것 같다"며 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검은 재앙 앞에서 땅이 꺼져라 통곡했던 주민들 얼굴에 서서히 희망이 비치는 게 기뻐요. 겨우내 태안에서는 웃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희망의 싹이 한 뼘 한 뼘 자라고 있어요. 기름으로 뒤덮인 해안과 분노 섞인 절망에 몸부림치던 주민들을 봤던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적을 만든 사람은 사고현장에 우르르 몰려온 정치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에요. 미라클 메이커(Miracle Maker)는 바로 차가운 바닷바람을 안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기름을 닦아낸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이에요.

 코흘리개들의 고사리 손이 죽어가던 바다에 생명을 불어 넣었어요. 아주머니들의 반찬 냄새 나는 손이 슬피 우는 주민들에게 격려가 됐어요. 그리고 팔순 노인들의 주름진 손이 아파 신음하는 갯바위를 어루만져 소생(蘇生)시켰습니다.

 

 '뻥'이 아니에요. 겨우내 바위 틈에서 이 큰 눈(?)을 부릅뜨고 기적을 만들어가는 하얀 방제복 물결을 지켜본 걸요.

 지난 1월,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었어요. 미끄러운 바위에 매달려 하염없이 기름을 닦아내는 한 칠순 할머니 때문에 제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할머니는 코를 훌쩍이시면서 제 놀이터를 박박 문질러 주셨어요. 할머니 손길에서 어처구니없는 국가적 재난을 또 당한 데 대한 한탄, 사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이들에 대한 용서, 그리고 자식이 저질러 놓은 일을 말없이 눈물 흘리며 수습하는 어미의 희생을 보았어요.

 또 저는 백사장과 갯바위를 뒤덮은 방제복의 주인공들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응집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열기보다 더 감동적이었어요. 우리 국민성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국가적 위기 순간에는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는 폭발적 응집력을 보입니다. 돌쨍이 말이 맞죠?

 자원봉사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죠(어디서 주워들은 얘기에요. 큭큭~)."

 봉사자들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나머지는 하느님 섭리에 맡겨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하느님의 최고 걸작인 대자연에는 놀라운 회복능력이 있답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그 능력을 더 믿어요. 왜냐하면 피부로 느끼니까요. 이미 저 깊은 바닷 속에서 회복과 치유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어요. 기름 찌꺼기와 싸우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리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집게발 모으고) 꾸벅.

 이 난리통에 감사할 일이 뭐가 있냐구요? 모르시는 말씀. 이 시련 속에 인간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걸 왜 모르세요.
 그것은 생태계를 멸시하는 데 대한 경고일 거예요. 또 화석연료를 쉴새 없이 실어 나르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현대 산업사회 문명에 대한 성찰이겠지요. 한겨울에도 기름 펑펑 때가며 반팔 입고 지내는 철(?) 모르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 정신 좀 차리세요! 그리고 대형 승용차만 좋아하는 분들, 그 과시욕 좀 버리세요! 이 수난 속에는 생명에 대한 불감증을 흔들어 깨우려는 그분의 사랑도 담겨 있어요.

 돌쨍이가 그걸 어떻게 아나구요? 하느님은 본래 인간의 지혜로는 알 길이 없는 방법으로 존재를 드러내시는 분 아닙니까.

 아울러 '사랑의 매'를 겨울철에 드신 것도 감사해요.

 삼복더위에 기름이 대량 유출됐다고 가정해보세요. 방제복은 찜통이나 다름 없어 단 10분도 입고 있지 못할 거예요. 높은 수온이 악취를 증폭시키면 현장 접근도 힘들어요. 어지러워서 쓰러지는 봉사자가 속출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복구작업 속도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죠.

 태안 바다는 아직도 많이 아파요. 하지만 다시 살아날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소생하고 있어요.
 부활대축일 아침입니다. 태안 바다도 반드시 부활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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