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순례의 땅, 성경의 고향 이스라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경하는 거룩한 땅이다. 이스라엘 관광청 후원으로 6월 6일부터 6박 7일간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특히 이번 순례는 그리스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이스라엘의 성지만 집중적으로 순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나자렛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순례 경로는 성경에 기록돼 있는 시간적 흐름보다는 지리적 위치나 교통편, 거리 등에 따라 결정되지만, 나자렛은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능한 맨 먼저 방문해야 할 성지다. 하느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시리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알려진 주님 탄생 예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다보니 나자렛은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특별히 마음이 끌린다. 아마도 예수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곳이라는 애틋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잠시 어린 예수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봤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러 나서기 전까지 잠시 이집트로 피난했던 때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맨발로 언덕을 뛰어 다니며 양들과 놀고,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하면서 사셨을 것이다.
나자렛의 대표적 순례지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성모영보성당).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시며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동정 마리아의 티 없는 믿음과 위대한 신앙고백의 현장이다. 웅장한 석조 건축물의 이 성당은 예수 일생을 주물 동판에 부조한 현관문과 백합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형상으로 만들어진 천장이 매우 아름답다. 성당 앞마당에는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주님 탄생 예고상이 있는데,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는 마리아 표정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지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순례에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을 기억하며 성가정의 참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을 빠져 나와 정원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성 요셉의 목공소 자리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성가정 성당)이 나온다. 지하에는 요셉의 정혼과 꿈, 임종을 형상화한 세 개의 유리화가 말없는 봉사로 예수와 마리아에게 힘이 되어 주신 그의 삶 만큼이나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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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요셉성당 지하 경당에 있는 유리화. 꿈에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맞아들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
▨ 갈릴래아 지방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갈릴래아 호숫가는 예수께서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그물을 드리우신 곳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 가운데 대부분이 갈릴래아에서 이뤄졌다. 특히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 연안 타브가(Tabgha) 지역은 성경에 기록된 산상설교(마태 5,3-12)와 빵과 물고기의 기적(마태 14,13-21),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 사건(요한 21,15-19)이 이뤄진 곳이다.
둘레가 50여 ㎞에 달하는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매우 넓다. 평화로운 풍광과는 달리 날씨가 변덕스럽다. 집채만 한 파도가 일기도 하고, 잔잔하다가도 일교차가 커지면 풍랑이 거세어진다. 그러나 순례단이 갈릴래아를 찾던 날은 축복인듯 날씨가 마냥 순했다.
'빵과 물고기 기적 성당', '베드로 수위권 기념성당'을 거쳐 호수 북쪽에 산 언덕에 위치한 '참행복선언기념성당'에 오르면 믿음이 부족해 세 번씩이나 배반한 베드로마저 당신 도구로 쓰신 주님의 깊은 뜻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한 '빵과 물고기 기적 성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중앙 제대 아래 예수께서 빵을 올려놓으셨다고 전해지는 큰 바위와 작은 초를 켜놓은 가녀린 불빛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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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 물고기 기적성당 제대 아래 모자이크 |
제단 앞 바닥에 빵과 물고기 기적을 형상화한 모자이크도 일품이다. 그런데 광주리에 담겨있는 빵은 4개뿐이다. 빵 한 개는 어디로 갔을까.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뜻이란다. 혹은 성체성사를 나타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기적 중 네 복음서 모두가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이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참 행복을 선언하시며, "마음이 가난하고, 의로움에 주리고,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좌절이 '일용할 양식'이 없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또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들에게 작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들 또한 축복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2000년 전 어느 날 부활한 예수께서 스승을 잃고 낙심해 있는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는 '베드로 수위권 기념성당'.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이곳에서 마음이 저려옴을 느꼈다. 이미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사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출하시며 교회의 반석(초대 교황)으로 삼아 수위권을 부여해 주신 예수님. 우리는 또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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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래아 호숫가 타브가 지역 베드로 수위권 기념성당 마당에 있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안수하시는 조각상 |
바로 옆 갈릴래아 호수와 어우러진 해질녘 성당의 풍광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제자들과 빵과 구운 생선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요한 21,1-14)는 '멘사 크리스티'(Mensa Chrisi, 그리스도의 식탁)라 불리는 큰 바위와 베드로를 안수하는 예수상을 보니 인간적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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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 수위권 성당 내부에 있는 '멘사 크리스티'.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 한 곳. 넓고 단단한 바위가 변함없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것 같다. |
예수께서 특히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도시 카파르나움에는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께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고 선포하던 회당(시나고그)과 베드로 집터 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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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파르나움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성당 |
베드로의 집터에는 원래 집터가 파묻히지 않도록 큰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들어 올리는 공법으로 지어진, 어부 베드로가 탔던 배 모양의 성당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바닥이 강화유리로 돼 있어 아래 집터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예정보다 늦게,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성당에 도착했으나 성당을 관리하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인 수사가 편의를 봐주어 거룩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을 마음 속으로 감사드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 간 곳이 '참행복기념성당'. 진복팔단성당 또는 산상설교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여덟가지 참된 행복의 가르침을 준 것을 기리는 뜻에서 팔각형 모양의 돔을 얹은 성당이다. 여덟가지 행복을 의미하는 글이 팔각형 성당의 내부에 각각 걸려 있다. 각자 개인적으로 성당 안에서 잠시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나 가슴 떨리고 행복한지 감사의 눈물이 울컥 쏟아질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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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참행복선언기념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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