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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여행이야기

봄꽃 만나기 좋은 곳, 한옥 펜션

by 세포네 2007. 3. 18.

봄꽃 만나기 좋은 곳, 한옥 펜션

 '절대 고요' 속에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 들릴 듯

 

조선일보 구례=글·김성윤기자

 

한상훈家 


한그루씩 심어 어느새 농장으로

 

휴대폰 소리도, 자명종 시계도, 억척스레 하루를 일궈보라 채근하는 아침 방송도 없다. 구리 풍경(風磬)이 걸린 한옥의 처마 위로 새들의 바지런한 수다가 잰 걸음을 한다. 산새들의 반주에 암탉이 근사한 독창까지 얹었는데도 팔자 좋은 백구(白狗)는 진달래 개나리 꿈을 꾸는지 잠을 털어낼 생각이 없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징광차밭 안에 있는 한옥 ‘한상훈가(家)’의 새벽이다. 한지바른 격자무늬 창 밖으로 돌담이 걸렸고 그 위로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옆집 중학생처럼 사랑채를 훔쳐보고 있다. 밤새 봄비까지 몰래 내려 디딤돌 위 신발이 촉촉히 젖었다. 신발을 꺾어 신고 나선 산책길에는 매화가 녹차밭과 어우러졌다. 길 따라 흐르는 시내는 세 걸음 옮길 때마다 변덕스레 다른 소리를 낸다.

 

 

▲ 전남 보성 벌교읍 장광차밭 사랑채의 창호문을 열면 매화가 아침 인사를 한다.

산책길 옆에는 싱그러운 야생차밭과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어 봄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징광차밭’ 혹은 ‘징광다원’은 야생 차밭과 전통 옹기 제작으로 이름나 있다. 세상을 뜬 남편을 이어 농장을 꾸려가는 차정금씨가 “차 밭에 그늘을 드리워야 하는데 꽃이 예쁜 매화가 좋겠다” 하며 2004년부터 심은 매화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씩 늘어 어느새 농장 곳곳을 장식하게 됐다. 2번 국도에서 징광다원까지는 꼬불꼬불 좁은 산길로 3㎞다. 금화산 앞으로 자리 잡은 징광 저수지가 농원까지 길 안내를 한다. 큰길서 멀리 떨어진 만큼 인적이 드물다. 꽃구경 명소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상춘객(賞春客)들의 넘치는 활기에 귀가 먹먹해질 때쯤, 산속에 숨은 매화와의 조용한 만남이 반갑다.

22만평 규모의 징광다원에는 한옥이 두 채다. 서울 한남동에 있던 한옥이 1980년 도로 확장 때문에 철거될 신세에 놓인 것을 차씨의 남편인 고(故) 한상훈씨가 그대로 옮겼다. 조심조심 기와 서까래 대들보를 뜯어내 남도까지 실어다 조립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한씨 부부에게는 만만찮은 작업이었지만, 불타버릴 뻔한 안채와 사랑채는 타향의 산골짜기에 새 보금자리를 틀게 됐다.

한씨 부부가 살림집으로 쓰던 것을 차씨는 2003년 개조해 민박용 한옥으로 개방했다. 각 채마다 양변기와 샤워시설이 갖춰진 욕실을 넣었고 춥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리 창문을 한 겹 덧댔다. 가스 보일러도 설치했다.

한 가족이 묵기에는 사랑채가 알맞다. 넓은 방 하나에 조리 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펜션 느낌이 난다. 방 옆에 붙어 있는 넓은 다락마루는 봄바람 맞으며 낮잠자기 제격이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가스 버너를 이용해 고기를 구워먹거나 하는 일은 금지돼 있다. 돌담 안에 매화 동백 철쭉 등 꽃나무 10여 그루가 심어져 있어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꽃구경은 이어진다.

여러 가족이 함께 놀러 가려면 방 두 개와 넓은 거실이 구비된 안채를 빌리면 된다. 한옥이니만큼 방음이 잘 되지 않아 건너방서 나는 소리도 쉽게 들린다. 불편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며 대화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광주톨게이트 지나 서순천IC-17번 국도-2번 국도를 타고 벌교 지나 보성 쪽으로 계속 가다가 소방서 지나 ‘옥전리’ 표지를 보고 우회전. 길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징광문화’ 표지판이 보인다.

● 문의 (061)857-5064,

 

●한옥 민박 가격
사랑채(3~4인용·15평) 25만원, 안채(8~9인용·26평) 40만원


양우당


벗과 함께 茶 나누고 싶다


 

▲ 봄비를 머금은 매화

 

매화가 많은 전남 광양 다압면에는 한옥 민박이 없다. 대신 순천 방향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백운산 도선국사마을에 ‘양우당(陽友堂)’이라는 깔끔한 한옥이 있다. 차(茶)를 좋아하는 박연숙씨가 광양을 찾은 손님들과 녹차를 나누고 싶어, 낡은 한옥을 허물고 지난해 문을 열었다. 새로 올린 집이라 한옥의 ‘묵은’ 느낌은 없지만 방이 깔끔하고 방마다 현대식 욕실이 갖춰져 있어 머물기 편리하다.

 

주변에는 물맛이 좋아 원님 전용 식수로 쓰였다는 ‘사또 약수터’와 도자기, 천연염색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양산 테마마을’이 있어 아이들과 즐기기 좋다.

 

ㄷ자형 한옥에 공용 다실(茶室)과 함께 숙소로 쓰이는 작은 방 세 개(2.4평·2~4명용), 큰 방 한 개(4.7평·5~6인용)가 있다. 가격은 동일하게 7만원이다. 개별 취사시설은 없다. (061)762-8934,

  


쌍산재


인사동 카페같은 세련된 단장

 

서울 인사동에 있을법한 한옥 카페? 대문을 밀고 들어선 ‘쌍산재(雙山齋)’의 첫인상이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쌍산재 주인 오경영씨가 지난 2004년 6대조 할아버지께서 지은 한옥을 깔끔하고 세련되게 재단장했다. 어머니가 거주하던 안채와 여자 형제들이 시집가기 전 지내던 건너채, 할아버지가 공부도 하시고 아이들도 가르치던 언덕 위 서당채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낡고 허물어진 황토벽을 다시 바르면서 기왓장을 박아 무늬를 만들었다. 방마다 주방과 비데까지 갖춘 화장실을 따로 마련했다. 한옥이지만 도시사람이 지내기에도 별 불편 없다. 너무 깨끗해서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영화 세트장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 쌍산재

 

쌍산재의 백미는 역시 서당채다. 안채 뒤 대나무숲을 통과해 목단과 작약이 양옆으로 심어져 있는 길을 따라 낮은 구릉을 오르면 서당채가 보인다. 서당채 입구가 길과 바로 이어지지 않고 옆으로 약간 어긋나 있다. 문 앞에는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안이 약간 들여다보이면서도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는 발 역할을 한다.

서당채를 나와 오른쪽으로 틀면 길고 좁은 흙길이 나 있다. 흙길 끝에 작은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니 숲 사이로 저수지가 있다. 나무 그림자가 물에 어른거려 더욱 푸르다. 그러고 보니 ‘영벽문’(映碧門)이다. 저수지 제방은 가볍게 산책하기 알맞다. 문을 나와 오른쪽 숲 뒤로 논밭이 나온다. 반듯하게 구획 정리하지 않은, 이른바 다랭이 논이 언덕을 따라 계단처럼 올라간다. 논과 밭 사이를 걸으면 놀란 참새와 꿩 같은 새들이 후두둑 하늘로 날아오른다.

▲ 고즈넉한 한옥에서 감상하는 매화와 산수유-구례 쌍산재 

 

쌍산재에서 하룻밤 묵으려면 방에 따라 6만~15만원이 든다. 건너채 2~3인실 6만원, 안채 10만원, 서당채 12만원, 15만원. 성수기에는 조금 더 받을 수 있다. 예약·문의 011-635-7115, 010-9644-7116, oky7115@hanmail.net. 홈페이지 www.쌍산재.kr

●가는 길
(서울출발)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논산고속도로,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전주IC에서 17번 국도를 달리다 남원에서 19번 국도로 바꿔 달리면 구례군이다. 4시간쯤 걸린다.

 

●산수유꽃 축제
3월15~18일

 

●문의 구례군 문화관광과 (061)780 -2224,

 

 


곡전재


외가에서처럼 쉬어 가세요

 

▲ 매화와 산수유화 꽃꽂이

 

봄꽃과 한옥의 운치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한옥 펜션으로 ‘곡전재(穀田齋)’도 있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다. 호박돌을 2.5m 높이로 쌓아 성곽처럼 보이는 돌담이 우선 인상적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5채 한옥이 얌전히 돌담 안에 들어찼다. 이 중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안채를 제외한 동행랑, 중간채 등 나머지 4채를 펜션으로 개조해 손님을 받는다.

 

완벽하게 전통적이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주인 이병주씨는 “그냥 시골 외갓집에 왔다 생각하시라”고 했다. 방마다 화장실과 주방이 붙어있다.

 

 

▲ 한옥에서 감상하는 매화와 산수유-구례 곡전재

집 곳곳에 매화나무와 산수유가 막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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