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가톨릭교리

교회가 어떻게 갈라지게 됐나요(2)

by 세포네 2007. 2. 11.

 1054년 '동방이교'로 하나인 가톨릭 교회는 로마 교회(또는 라틴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섭니다. 동방 교회는 자신들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 신앙을 지닌다고 주장해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고 합니다. 정교회는 지역(또는 나라) 이름을 따서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한국 정교회 등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후 교회는 다시 한번 큰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이 그것입니다.

 15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자기 나라 이익을 앞세우면서 교황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교황권은 영적 권위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세속 권력과 결탁하거나 이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와 함께 상공업의 발달은 부의 편중을 초래하면서 빈부 격차와 함께 황금만능주의 풍조를 심화시켰고,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수입이 줄어든 교황청은 수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습니다. 또 돈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행위가 성행하면서 교회 지도층의 부패도 만연했습니다.

 다른 한편 이 시기는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건축ㆍ미술ㆍ문학ㆍ음악 등 학문과 예술이 크게 진흥합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재건도 이 시기에 이뤄집니다. 대성전 재건에 따른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교황청은 대사(大赦)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2006년 11월12일자 895호 참조)

 대사는 원래 기도나 선행에 대해서만 주기로 돼 있는데 이것이 중세말에는 남용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동전이 상자 안으로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였습니다. 그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도자로서 비텐베르크 대학 성서학 교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심하던 그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는 성경 말씀에서 위안을 얻고'신앙에 의한 의화'를 내세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대성전 재건과 관련해 대사가 남용, 오용되자 그는 1517년 10월 대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비롯해 선행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등 95개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처음에 루터는 가톨릭 교회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하면서 교황청은 1521년 1월3일 파문 교서를 발표했고, 루터는 이 교서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교파가 루터교입니다.

 루터에 이어 독일어 사용권인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1484~1531)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네바에서는 칼뱅(1509~1564)이, 각각 가톨릭 교회에 대항해 종교 혁명을 시작하는 등 종교 혁명의 여파는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돼 나갔습니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는 바로 이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여러 그리스도 교파들을 가리킵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항거자" 또는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에 항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헨리 8세 국왕(1491~1547)의 혼인 문제가 발단이 돼 종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헨리 8세는 교회법이 금지하는데도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함으로써 1534년 파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황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영국의회는 1534년 11월 '수장령'을 통해 국왕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황권과 결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성공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1054년 동방이교에 이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은 그리스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는 쇄신 노력을 새롭게 하게 됐는데 트렌토 공의회(1545~1563)를 통한 교회 쇄신 작업이 그것입니다. 트렌토 공의회의 쇄신 작업들은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신앙과 생활의 규범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 동안의 분열 역사를 청산하고 그리스도 교회들이 다시 일치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