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 교회의 결정적 분열이 이뤄진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 6세기에 세워진 이 성당은 15세기 오스만 터키의 침공 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월18~25일은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일치 기도 주간'이라고 하는데, 하나인 교회가 어떻게 갈라지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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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 교회는 여러 교회들로 갈라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크게 로마 가톨릭(천주교회),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성공회 등으로 갈라져 있지요. 분열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복잡합니다만, 요점만 추려서 두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근동(터키, 시리아, 이집트를 포함한 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끝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동방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고쳤습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정치 문화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종교 중심지로서도 급격히 부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회의를 열어(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예우상 로마 주교(곧 교황을 말합니다)에 다음 가는 지위를 갖는다고 결정합니다. 이와 함께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 그리고 예루살렘을 총대주교좌 교회로 공인합니다. 이 총대주교좌들은 주변 교회들을 이끌면서 고유한 전례와 관습들을 발전시켜 나가게 되지요.
그런데 로마에서 볼 때 다른 네 지역 교회는 모두 지리적으로 로마 동쪽이어서 로마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로마 교회 또는 서방 교회 또는 라틴 교회, 이들 동쪽 교회들을 동로마 교회 또는 동방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성장하면서 문제도 생겼습니다. 교리와 관련해서 또는 신앙 생활과 관련해서 의견 대립이 격화되면서 분열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이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질 때면 교회는 보편 공의회(각 지역 교회의 모든 주교들이 다 참여해서 결정하는 교회 회의)를 열어서 정통교리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했지요.
다른 한편으로 로마 교회는 라틴어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를 쓰는 등 전례 언어도 다르고 제도나 관습도 달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때로는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054년에는 동서방 교회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되는데 이를 '동방이교(東方離敎)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지만 결정적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황 수위권 문제였습니다. 이미 381년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총대주교좌의 권위와 함께 로마 주교 다음 가는 지위를 얻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앙고백문 곧 신경의 문구를 둘러싼 대립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일미사 때 바치는 신경에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구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들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Filioque)라는 문구를 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이를 '필리오퀘' 논쟁이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라틴 교회에서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라틴 교회와 수도원들에 대해 라틴 전례가 아닌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교황 레오 9세(재위 1049~1054)는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했으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훔베르트 추기경은 7월16일 파문 교서를 작성,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성당 중앙 제대 위에 놓고는 돌아갔습니다. 이에 맞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회의를 소집, 파문서를 작성한 훔베르트 추기경 등을 역시 파문했습니다.
이로써 동서 교회는 완전한 결별을 고하게 됐고, 이를 동방이교(Eastern Schism)라고 부릅니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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