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덴시오(2.12)◀
신분 : 주교
연대 : 465년
지역 : 베로나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인 성 가우덴티우스(또는 가우덴시오)의 유해는 고대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성당에 모셔졌다.
▶고쉘리노(2.12)◀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53년
지역 : 토리노
베네딕토회 수도승인 성 고스켈리누스(또는 고쉘리노)는 114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이탈리아 토리노 근방 산 솔루토레(San Solutore) 수도원의 제2대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의 유해는 1472년 장엄하게 이장되었다. 그는 고슬린(Goslin) 또는 고젤리누스(Gozzelinus)로도 불린다.
▶다미아노(2.12)◀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아프리카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집 Acta Sanctorum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는 2월 12일에 기념하는 다미아누스(Damianus, 또는 다미아노) 이름을 가진 두 성인을 구별했다. 첫 번째 성인은 아프리카에서(아마도 알렉산드리아) 순교한 군인 출신이고, 두 번째 성인은 로마(Rome)의 순교자로서 성인의 유해가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서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살라망카(Salamanca)로 옮겨졌다.
▶다미아노(2.12)◀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로마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집 Acta Sanctorum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는 2월 12일에 기념하는 다미아누스(Damianus, 또는 다미아노) 이름을 가진 두 성인을 구별했다. 첫 번째 성인은 아프리카에서(아마도 알렉산드리아) 순교한 군인 출신이고, 두 번째 성인은 로마의 순교자로서 성인의 유해가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서 발견되어 에스파냐의 살라망카(Salamanca)로 옮겨졌다.
▶루단(2.12)◀
신분 : 왕자
연대 : 1202년경
지역 : 알자스
성 루단은 아마도 스코틀랜드의 왕자였는데, 부왕의 서거 후에 주로 자선활동에 막대한 유산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순례자를 위해 거대한 요양소를 짓고 걸인이나 병약자들을 보살폈으며, 자신도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다. 한 번은 그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어느 길가에서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느릅나무 밑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곧 죽는다는 계시를 받고는 즉시 일어나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 전에는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이 왔는데, 한 천사가 성체를 영해주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기적적으로 그 지역의 모든 성당의 종들이 울렸고,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인근에 안장되었으나 30년 전쟁 중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는 루덴(Luden)으로도 불린다.
▶마리나(2.12)◀
신분 : 동정녀
연대 : 연대미상
성녀 마리나는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에우게니우스(Eugenius)란
사람의 딸이다. 그녀의 부친은 홀아비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자 친척집에 맡겨둔 어린 딸 마리나 생각에 마음이
헷갈리게 되자, 원장에게 그 아이는 마리누스(Marinus)라는 남자 아이이니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부친과 사별할 때까지 그러니까 17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남자
수도자로서 계속하여 생활했는데, 어느 여인숙 주인의 딸이 마리누스가 자신에게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때문에 그녀는 수도원 밖에서
걸식을 하며 살았고, 그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마리누스의 아들이니 돌보라고 맡기고 떠났다. 성녀 마리나는 그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끝까지
인내하였다. 5년 후 원장은 마리누스의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인정하여 5세 된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서 다시금 살게 했으나 매우 힘든 일만
시켰다. 그 얼마 후 마리누스는 운명하였고,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마리누스가 여성임이 밝혀졌다. 원장 이하 모든 수도자들과 시민들은 그녀의
위대한 용덕과 인내심을 찬양하였고 엄숙한 장례가 거행되었다.
▶멜레시오(2.12)◀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381년
지역 : 안티오키아
남 아르메니아(Armenia)의 멜리테네(Melitene) 출신인 성 멜레티우스(또는 멜레시오)는
358년경에 세바스테(Sebaste)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주교직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사막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시리아의
베로이아(Beroea)로 잠적하였다. 361년 일단의 아리우스파(Arianism)와 가톨릭이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로 그를 서로 추천하였으나,
나중에 가톨릭측은 아리우스파의 개입을 이유로 그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황제에 의해 유배되었다.
한편 그를 옹립하려던 측근들에 의하여 멜레티우스 이단이 발생하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와의 사이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다. 374년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바울리누스(Paulinus)를
총대주교로 임명함으로써 사건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으나, 아리우스파 황제인 발렌스가 사망함에 따라 극적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는 이처럼 극심한
교회의 혼란기에도 수도자와 같은 훌륭한 삶을 살았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381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 회기 중에
사망하였다.
▶모데스토(2.12)◀
▶암모니오(2.12)◀
신분 : 유아,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모데스투스(또는 모데스토)와 성 암모니우스(Ammonius)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군인 순교자 성 다미아누스(Damianus, 2월 12일)의 어린 아들들로 전해지나 그 외에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모데스토(2.12)◀
▶율리아노(2.12)◀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로마 순교록에서 성 모데스투스(또는 모데스토)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의 연결은 다소 임의적이다. 성 모데스투스는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했으며 에스파냐 남동부 카르타헤나(Cartagena)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성 율리아누스는 16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안토니오 카울레아(2.12)◀
신분 : 주교
연대 : 901년
지역 : 콘스탄티노풀
성 안토니우스 카울레아(Antonius Kauleas, 또는 안토니오)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사람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성상 파괴 정책을 반대하여 이곳에 숨어살고 있었다. 모친과 사별한 후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지극한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지냈다. 그는 수도원장이 된 후 자기 부친에게도 수도복을 입혀드리는
등 지극히 모범적인 수도자였다.
레오 6세 황제의 형인 스테파누스(Stephanus)가 죽자 성 안토니우스는
893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특히 전임자인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23일)와 성
포티우스(Photius, 2월 6일) 사건' 등 어렵고 힘든 난국에서 평화의 수호자로 활약하여 '순결한 영혼과 균형 있는 사람'이란 평을
들었다. 공적인 기도 외에 그는 고행, 보속, 기도에서 어느 수도자보다 탁월하다고 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에울랄리아(2.12)◀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304년
지역 : 바르셀로나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태생인 성녀 에울랄리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그녀가 오레르(Aulaire)로 알려졌는데, 메리다(Merida)의 에울랄리아(12월 10일)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에텔발도(2.12)◀
신분 : 주교
연대 : 740년경
지역 : 린디스파른
성 에텔발두스(Ethelwaldus, 또는 에텔발도)는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3월
20일)의 협조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중에 스코틀랜드 올드 멜로즈(Old Melrose)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이 수도원에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신심을 돈독히 하여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래서 린디스파른의 주교가 서거했을 때 성 에텔발두스가 그를 계승하여
관할교구를 정성껏 보살피게 되었다. 그는 성 베다(Beda)가 자신에 대한 기록에 몰두할 때까지 살아
있었다.
성 베다의 기록에 따르면 성 에텔발두스는 린디스파른에 대형 십자가를 세웠고, 그의 선임자가 시작했던
복음서 장정 사업을 완성하여 견고하게 보존되도록 하였다. 그는 은수자인 성 빌프레두스(Bilfredus, 3월 6일)로 하여금 복음서의 표지를
금속과 보석으로 장식토록 하였는데, 그 사본이 지금 대영제국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가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되자 그의 유해를 덴마크 사람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스코틀랜드(Scotland)로 그 다음에는 체스터(Chester)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럼(Durham)
대성당으로 옮겨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훔벨리나(2.12)◀ (복녀)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1092-1135년경
프랑스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의 여동생인 훔벨리나(Humbelina)는 프랑스의 디종(Dijon)에서 태어나 귀족이던 귀 드 마르시(Guy de Marcy)와 결혼하였고 귀족적인 생활을 하며 살았다. 어느 날 그녀가 오빠를 만났을 때 화려한 옷과 생활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자 그녀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마음으로부터 회개의 빛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서 줄리(Jully)의 베네딕토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곳의 원장이던 엘리사벳(Elisabeth)을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으며, 엄격한 생활을 통하여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63년에 승인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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