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한결같이 각기 다른 개성과 삶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때로는 짙은 동질감까지 느낀다. 때론 그들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모습보다 인간적이고 나약한 모습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서인물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그들이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자신들의 심경을 고백하라고 하면 어떠할까.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있을 것 같다.
아브라함 : 나는 지난번 장황하게 내 자신에 대해서 설명했으니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나를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릅니다만 사실 저는 그 말이 부담스럽습니다. 저도 평범한 한 신앙인일 뿐입니다. 저는 저의 일생이 죄와 잘못으로 얼룩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로 인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승화되고 좋게 결론지어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살아오면서 한가지 변하지 않는 믿음은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진실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실현될 때까지 때로는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그 침묵을 견디면서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과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저의 한평생을 지탱했던 큰 힘이었습니다.
이사악 : 저는 창세기의 주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역할은 미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삶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만 서면 저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저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시고 몸소 하느님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버지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않는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아버지 아브라함은 내 전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분입니다. 아버지의 성격이 강직하고 활발하셨지만 저는 반대로 소심하고 겁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일생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아버지가 나를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사건입니다. 저의 목숨이 걸렸던 인생의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큰 사건이었듯이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은총과 축복의 순간이었음을 지금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야곱 : 나는 머리가 뛰어나고 비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는 성격입니다. 실제로 나는 살면서 내가 원했던 것을 모두 가졌습니다. 장자권, 예쁜아내, 재물, 심지어 하느님의 축복까지 끈기있게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처럼 나에게는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삶 속의 나를 이끄신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나를 기다려주고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 할아버지,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이셨습니다.
요셉 : 나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드라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 그것이 고통의 씨앗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이집트 땅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우여곡절 끝에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람이 아무리 계획해도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삶에 펼쳐진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은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부모와 선조에게 물려받은 가장 값진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삶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는 분명 그것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분이 계심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고난과 실패, 죄악까지도 선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과 고난의 늪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시간과 계획에 맞추어 이루어졌습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이 몸을 영광스럽게 만드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나처럼 고통과 고난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큰 뒷받침이 되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찾으려고 할 때, 그것이 고통이든 행복이든 우리는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한마디로 마감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통과 고난이 오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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