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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도레 <율법을 읽어주는 에즈라 예언자> |
가톨릭교회는 공의회 등을 통해 개혁을 계속해 왔다. 물론 개혁은 중요한 교리나 교회의 전승을 간직한 채 교회가 그 시대에 맞갖게 살도록 하는 변화였다.
1914년 8월 20일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 바오로를 주보로 모시는 수도회를 만들어 사회홍보 수단을 통해 선교에 종사하려고 시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현대문명의 이기는 세속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오히려 홍보 수단을 이용해서 선교에 선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의 시도를 위험하다고 악평하는 교회 내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개혁은 자고로 공격과 비판에 직면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대의 최고 영성 지도자로 존경받는 안셀름 그륀 신부님에게 코로나가 성행할 당시 나는 ‘코로나 종식 후 교회에 변화가 올까요?’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륀 신부는 단호하게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하셨다. 교회는 많은 이탈자(특히 젊은층)가 생길 것이며 교회는 다각도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최근 주임 신부님들은 젊은이들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그륀 신부님은 그동안의 사목 패러다임이 변화되지 않으면 신자의 감소는 계속될 것이라 염려했다. 이제 교회는 안에서 신자들을 기다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야말로 개혁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제들과 레위인들, 바빌론에서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은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시작하였다. 집 짓는 이들이 주님의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찬송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앞에서 성전이 기초가 놓인 것을 보고 목 놓아 울었다.(에즈라 3,8-13참조) 그리고 성전은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완공되었다.
예언자 에즈라(기원전 480-440년)는 바빌론 유배지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해이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 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그를 제2의 모세로 부른다. 그는 유배 기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졌던 우상숭배를 강력히 규탄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즈라는 절망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찢고, 하느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동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동체를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벽 공사를 완성하자, 에즈라는 모세 율법을 모은 책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선포했다. 유배된 많은 유다인들이 이방인 여성들과의 결혼으로 더욱더 이스라엘의 신앙에 위기가 닥쳤다고 생각했다, 백성과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다. 에즈라의 개혁은 모세오경의 준수 등, 이스라엘의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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