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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시조, 성 안토니오 아빠스

by 세포네 2024. 1. 21.

철저한 고독과 침묵… 말씀과 기도 중심의 수도생활 표본 만들다
은수자로 더 충실하게 살고자
이집트 콜짐 산 정착해 수덕생활
말씀에 힘입어 유혹 이겨내고
기도로서 참된 금욕생활 수행

“항상 그리스도를 호흡하라.”

‘모든 수도승의 원조’, ‘사막의 성인’, ‘수도생활 역사의 시조’로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는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제자들에게 이 유언을 남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항상 그리스도를 호흡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강조한 이 말은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치열하게 복음을 살았던 성인의 가르침을 대변한다. 금욕 생활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무장했던 성인은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싸우며 평생 주님만을 따랐다. 이런 영적 여정은 물질·세속주의 유혹이 넘치고 신앙이 흔들리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을 맞아 그의 삶과 영성을 살펴본다.

타데오 크리벨리 ‘성 안토니오 아빠스’. 안토니오 성인은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 되뇌였고, 일하면서 기도했다.

■ 수도생활 역사 시작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295 혹은 300~373)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통해 성인의 일대기와 금욕생활에 대한 이상적 모델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이 책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수도생활에 대한 최초의 문헌으로, 교회에 수도생활을 알리고 그 이상을 확산·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안토니오 성인을 모범으로 삼고 그를 따라 살고자 사막으로 갔다. “안토니오와 더불어 수도생활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은 성인이 책에 기록된 최초의 수도자이기 때문에 나왔다.

이집트의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릴 때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20세 되던 해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과 살던 안토니오 성인은 어느 날 교회에 들어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1)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눈 성인은 한 번 더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34)라는 소리를 듣고 여동생 생계를 위해 남겼던 재산마저 팔아 어려운 이들에게 주었다.

이후 당시 관습에 따라 마을 밖에서 한 은수자의 가르침으로 금욕생활에 전념한 성인은 일을 해서 필요한 것을 마련했고, 수입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남겼다. 일하면서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 되뇌었다. ‘지혜로운 꿀벌’처럼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에 대해 들으면 찾아가서 고유한 덕을 체득했다.

그 과정에서 성인은 무수한 악령들의 공격을 받았다. 악령들을 식별하는 법을 터득하고 주님에게서 ‘싸움의 기술’을 배운 그는 하느님 말씀과 시편 기도에 힘입어 싸워 나갔다. 성인은 평생의 영적 여정에서 갖가지 악령을 대면했다. 생의 마지막에서조차 악령들의 유혹을 받았다. 그가 마주한 악령들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유혹이기도 하다. 이를 돌파해 가는 모습들은 우리에게도 악을 극복하는 하나의 모델로 다가온다.

악령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로 옮긴 그는 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 주님의 도우심에 의탁한다. 더 나아가 그는 사막의 버려진 요새로 은거한다. 거기서 성인은 입구를 막아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점차 그의 성덕이 알려지며 많은 이가 도움과 조언을 구하게 되고, 사막에는 은수자들이 모여들었다.

성인은 은수자로 더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 콜짐(Kolzim) 산 위의 한 동굴에 정착해 기도와 수덕생활에 열중했다. 이 산은 후에 ‘홍해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 혹은 ‘안토니오산’으로 불렸다. 성인은 대필을 통해 수도자들에게 7편의 서간을 남겼는데, 이곳에서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 시기에 아타나시우스 대주교의 청을 받고 아리우스파들을 논박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들의 박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신자들을 위로하러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한 이후 두 번째였다. 이외에는 죽을 때까지 사막을 떠나지 않았던 성인은 105세 나이로 하느님 품에서 영적 여정을 완성했다.

안토니오 아빠스가 생애 마지막을 은거한 콜짐 산 위의 자연동굴 입구(위)와 동굴 안 작은 제대 및 성인 이콘들(아래). 허성석 신부 제공

■ 하느님의 사람

성인과 관련된 증언을 모아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집필한 아타나시우스 대주교는 성인을 사막에서 싸운 ‘하느님의 사람’(vir Dei)으로 묘사했다. 책 후반부에서 그는 성인이 “저서들 때문이나 학문의 지혜나 어떤 기술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타고난 영적 신심 덕분에 유명해진 것”이라고 전했다.

부르심에서부터 시작해 성인의 일생은 ‘말씀’에 기초한다. 자기 보화가 하늘에 있음을 확신해 주님을 따랐고, 늘 성경을 신뢰하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악령과 싸울 힘을 얻었다. 성경에서 삶의 양식을 배웠으며, 영들의 식별 기술을 깨우쳤다. 제자들에게도 성경의 계명들을 마음으로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유혹을 극복했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에 젖어 드는 것이었고,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그의 참된 금욕 수행은 지속적인 기도, 성경에 대한 경청이었다. 아타나시우스 대주교는 “안토니오의 기억이 성경책을 대신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철저하게 홀로 머물며 실천한 은수생활에 대해 성인은 “물고기가 물기 없는 곳에 오래 머무르면 죽는 것처럼, 수도승이 암자 밖에서 지체하거나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머무르면 하느님 안에서의 깊은 평화를 빼앗긴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교부들이 고독과 침묵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것을 영성생활의 근본으로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막에서 그가 추구했던 고독은 사람들로부터의 도피도, 고립도 아닌 하느님 얼굴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수덕생활은 죽을 때까지 매일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날마다 일어나면서 저녁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에 잘 때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자”면서 “우리 목숨은 확실하지 않고 주님의 안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는 동안 두 번에 걸친 알렉산드리아 방문은 수도생활과 교회와의 관계 발전 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평생 은수생활을 했지만, 교회 요청이 있을 때 기꺼이 세상 바깥으로 나왔던 모습은 ‘수도생활이 교회 제도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삶’이라는 방향을 보여준다.

또 각 사람에게서 ‘덕’을 체득하는 데에 열심했던 성인의 됨됨이는 ‘모든 것은 다 스승’이라는 교훈을 얻게 하고, 심지어 나쁜 것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음을 생각게 한다.

「사막의 안토니우스」(분도출판사/2015)를 번역한 허성석 신부(로무알도·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안토니오 성인의 삶은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됐기에 현대의 신앙인들에도 중요한 뜻을 지닌다”며 “수도승 생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수도승 생활 운동뿐만 아니라 금욕 생활에 대한 전문 용어론과 금욕적인 수도생활 운동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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