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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교향곡 100선

교향곡 100선 [78]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by 세포네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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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mphony No.7 in C major, Op.60 "Leningrad"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 ~1975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러시아혁명 2년 뒤인 1919년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졸업 작품인 1번 교향곡으로 천재 작곡가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거침없이 성가를 높여가던 그는 오페라 사건으로 처음 좌절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도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쇼스타코비치는 고향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당시 명칭)가 독일군에 포위된 1941년에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작곡했다. 1942년 3월 5일 시베리아에서 이 곡이 초연되자 소련 당국은 반(反)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웠고, 미국 등 연합국 음악계도 열광했다. 끝난 줄 알았던 스탈린과의 불화는 전후에 재연됐다.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장중한 곡을 원한 스탈린의 뜻과 달리 쇼스타코비치가 발랄한 분위기의 9번 교향곡을 발표한 것. 스탈린은 격분했고 그의 예술고문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1948년 악명 높은 ‘즈다노프 비판’으로 쇼스타코비치를 공격했다. 이듬해 국토개조계획을 찬양한 오라토리오로 스탈린상을 받고 난 뒤에야 복권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최고 작곡가라는 찬사와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하지만 사망 후 4년이 지난 1979년 공개된 회고록에서 그는 “교향곡 7번은 단지 점령된 레닌그라드가 아니라 스탈린이 철저히 파괴하고, 히틀러가 마지막 타격을 가한 레닌그라드를 애도한 곡”이라고 밝혔다. 공산당과 스탈린이 격찬한 곡에 폭정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아 조롱함으로써 ‘음악적 복수’를 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국민이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보여 준 고난과 인내,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서 전승(戰勝)으로 이끈 환희와 감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교향곡에는 같은 해에 스탈린상이 주어졌다. 그는 쿠이브세프에서 이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는데, 이윽고 완성될 무렵에는 레닌그라드 공방전도 끝을 고하고 소련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교향곡의 초연은, 전승의 기쁨에 넘친 1942년 3월 5일 쿠이브세프에서 향해졌고, 총보의 마이크로 필름은 곧 미국에 보내져 미국 초연은 같은 해 7월 19일 토스카니니 지휘로 NBC 교향악단이 맡았다. 전곡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 Allegretto
2악장 Moderato (poco Allegretto)
3악장 Adagio
4악장 Allegro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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