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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관현악곡 100선

관현악곡 100선 [5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교향시 '돈키호테'

by 세포네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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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 Quixote, Op.35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교향시 '돈키호테' 
           Richard Georg Strauss, 1864 ~1949

          



슈트라우스가 <돈키호테>를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서른세 살 때인 1897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니체의 저작에서 영감을 얻은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발표하고 나서 작은 가곡 등을 지으며 기분전환을 한 다음 이 작품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그 내용의 폭과 깊이 면에서 <차라투스트라>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으면서도 한결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까닭을 그런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을 듯싶다. 즉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다져진 슈트라우스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깔려 있으며, 나아가 전작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것을 보다 성숙한 시선과 필치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기사적 성격을 지닌 하나의 주제에 의한, 대관현악을 위한 환상적 변주곡’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주제’란 물론 ‘슬픔에 젖은 기사’로 일컬어지는 돈키호테를 가리킨다. 악곡은 여기에 ‘산초 판사’ ‘둘시네아 공주’ 등을 나타내는 동기들이 얽히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악곡 전체는 서주와 피날레가 붙은 1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며, 각 변주는 돈키호테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슈트라우스 특유의 생생하고 절묘한 관현악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라 만차의 어느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50세 노신사가, 밤낮 기사도에 관한 소설에 몰두해 있다가 정신 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기사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돈 키호테라고 고치고, 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학대 받는 자들을 돕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산초 판사'라는 농부를 종자로 거느린 돈 키호테는 모든 것을 기사도 소설의 이야기식으로 해석하고 그 이상에 따라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산초는 주인과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 타협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지만 주인에게 충실하다. 돈 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해 달려들고, 양떼들이 오는 것을 보고 대군이 밀려오는 것으로 착각해 싸움을 벌인다. 또 순례자들이 마리아상을 메고 오는 것을 부녀자를 약탈해 가는 것으로 알고 습격을 하는 등 많은 문제와 싸움을 일으킨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1547~1616)가 기사 '돈 키호테'와 그 시종 '산초 판사'의 여러 가지 모험을 묘사한 소설 '돈키호테'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으며, 돈 키호테의 이름은 이제 괴상하고 공상적인 인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는 낭만주의 최후를 장식하는 코다라고 할 수 있는 거물급 작곡가였다. 그는 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를 가지고 표제음악을 만들었다.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기본 주제와 함께 그들의 모험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음악적이면서 사실적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해 가는 중에 불어오는 돌풍, 풍차에서 떨어지는 모습, 상상의 여인에 대한 환상, 사랑의 이중창, 충성의 맹세, 돈 키호테와 산초와의 대화, 강물을 따라 떠가는 나룻배, 흠뻑 젖은 옷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돈 키호테의 죽음 등 이 작품에는 리하르트의 음악적 표현력이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만큼 잘 묘사가 되어있다. 그래서 이 곡은 돈 키호테를 음악으로 묘사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하르트는 유머감각 또한 매우 풍부했는데 일생동안 음악 못지않게 우스갯 소리도 많이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뮌헨의 이름 있는 호른 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였다. 리하르트가 결혼해서 낳은 외아들 역시 이름이 '프란츠'였다. 리하르트는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프란츠라는 점을 꼬집어 자기를 '프란츠 샌드위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보수적인 브람스를 따르다가 후에 진보적인 바그너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는 자기를 '리하르트 2세'라고 불러 달라고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바그너의 이름도 리하르트였기 때문이다.
만년에 그는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영국에 건너가 지휘를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기자가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 계획은 죽는 것이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표제음악인 돈키호테는 갖가지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연주하기가 다소 어려우면서도 예술성과 재미를 겸비한 훌륭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Wind machine'이라는 특수 악기가 등장해 바람소리 효과를 내기도 하고, 갖가지 특수 악기들이 대거 등장해 규모나 음악적으로 낭만음악의 극치를 선사한다.

서주
‘기사 풍으로 경쾌하게’ 출발하는 서주는 서재에서 중세 기사의 로맨스를 탐독하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그 심리상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편, 앞으로 작품에서 사용될 주요 동기들을 차례로 꺼내놓는 역할을 한다. 공상에 빠져 기사의 생활을 동경하던 돈키호테는 급기야 현실과 환상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결국 직접 기사가 되어 명예와 사랑을 위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귀부인에 대한 찬미와 동경(바이올린과 비올라), 돈키호테의 공상(클라리넷), 귀부인의 이미지(오보에), 모험에 대한 열정과 충동 등이 떠오른다.


주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이제 이야기의 주연과 조연이 등장한다. ‘슬픔에 젖은 기사 돈키호테’는 첼로 독주가, 그의 종자인 ‘산초 판사’는 비올라 독주가 맡는다. 돈키호테는 기사라고는 하지만 노년에 접어든 나이라 그다지 늠름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마음만은 고귀한 이상을 향한 동경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반면 평범한 촌부인 산초 판사는 소박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그려진다.

제1변주: 기사의 출발과 거인들과의 격투 / 풍차들과의 모험
돈키호테는 산초를 데리고 모험을 찾아 길을 떠난다. 낡은 갑옷에 두꺼운 종이로 만든 투구를 쓰고 말라빠진 말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 타고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이 묘사되고, 그가 공상 속에서 경애하는 ‘둘시네아 공주’의 형상이 목관과 바이올린에서 떠오른다. 얼마 후 그는 거인의 무리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 풍차들이었다. 잠시 후 그는 힘차게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에 휘말려 공중으로 떴다가 한 바퀴 돌아(하프의 글리산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그는 신음하며 둘시네아 공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의 첫 번째 모험은 이처럼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변주는 그의 공상을 나타내는 클라리넷 소리로 마무리된다.

제2변주: 아리판파론 대제의 군대와의 전투 / 양떼와의 전투
기사는 실패를 떨치고 일어서 모험을 계속한다. 이번에는 저 멀리서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대군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다시금 용감하게 돌진하여 대군을 흩어놓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대군은 양떼였고, 들판은 놀란 양들이 내지르는 비명(금관)과 양치기 소년의 다급한 피리(목관) 소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다.

제3변주: 기사와 종자의 대화
주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지켜보던 산초가 주인에게 불평을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기사 편력이라니, 다 부질없는 일이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산초의 이야기는 설교조로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그의 비아냥을 참지 못한 돈키호테가 화를 내며 호통을 치자 산초는 입을 다문다. 주인은 종자를 타이르며 기사의 이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후사할 것을 약속한다. 그의 어조는 기사의 이상과 경애하는 귀부인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하고, 음악은 꿈결처럼 유려한 판타지를 펼쳐 보이며 드높이 고조된다.


제4변주: 순례의 행렬과 불행한 모험
이번에는 흰옷을 입은 한 무리의 참회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가뭄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며 행진하는 중이었는데, 행렬 속에 부인복으로 감싼 상(像)을 모시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귀부인이 유괴된 것으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그녀를 구출하려 달려들지만, 허무하게도 상을 모신 사람이 어깨를 막대기로 내려치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산초는 주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지만 얼마 후 돈키호테는 깨어난다. 산초는 안심하고 주인 옆에서 잠든다.

제5변주: 밤을 지새며 무기를 지키는 돈키호테
그러나 돈키호테는 잠들지 않고 기사답게 무기를 지키며 밤을 지새운다. 그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감회에 젖어 둘시네아 공주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어디선가 산들바람(하프와 바이올린)이 불어오고, ‘슬픔에 젖은 기사’의 두 눈에서는 순수한 동경이 흘러넘친다.

제6변주: 귀부인과의 만남 / 가짜 둘시네
기사는 둘시네아 공주를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가슴으로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둘시네아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산초는 때마침 나귀를 타고 지나가던 볼품없는 시골 처녀를 귀부인이라고 부르며 주인을 놀리려 한다. 그런데도 돈키호테는 그 말을 믿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처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산초도 덩달아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괴상망측한 행동에 기분이 나빠져 화를 내며 가버린다.

제7변주: 대기를 가르며 거인족을 정복하다 / 공중 기행
한 여관에서 사람들이 두 얼간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유쾌한 해프닝을 벌인다. 즉 두 사람의 눈을 가리고 목마에 태운 뒤 바람을 일으켜 돈키호테로 하여금 하늘을 날면서 거인족을 정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윈드 머신과 팀파니가 울려 퍼지고 플루트의 반음계적인 패시지와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곁들여지며 돈키호테(현)와 산초(클라리넷)가 공중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하지만, 저음악기들은 지속저음을 연주하여 이들을 태운 목마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목마를 타고 한바탕 해프닝을 벌이는 장면.

제8변주: 마법의 배와 불행한 모험
강기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노 없는 작은 배를 발견한다. 기사는 그것을 전장으로 데려다 줄 마법의 배로 생각하고 올라탄다.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던 두 사람은 물레방앗간에 이르는데, 기사는 그것이 성채이고 그 일꾼은 악마라고 생각한다. 그는 악마를 물리치고 왕자를 구출하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가지만, 배가 물레방아에 너무 접근하자 일꾼이 배를 밀어 배는 뒤집히고 기사와 종자는 흠뻑 젖은 채 강가로 기어오른다.

제9변주: 두 마법사와의 싸움
다시 모험을 찾아 나선 기사는 나귀를 타고 오는 두 수도승과 마주친다. 하지만 그는 이들마저 사악한 마법사들로 오인하고 습격한다. 그들은 놀라서 달아나 버리고, 기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한다.

제10변주: 은빛 달의 기사와의 결투
‘은빛 달의 기사’로 변장한 돈키호테의 친구 칼라스코가 ‘슬픔에 젖은 기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와의 결투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돈키호테는 상대편에게 찬사를 보내고 모든 것을 단념한 채 귀향길에 오른다. 그가 고향의 들판에 이르자 양치기의 뿔피리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온다. 귀향 후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돈키호테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피날레: 돈키호테의 회상과 죽음
돈키호테는 병상에 누워 가족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그의 방에는 로맨스 소설책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그는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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