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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교향곡 100선

교향곡 100선 [11] 베토벤 / 교향곡 3번 '영웅'

by 세포네 2023. 4. 7.

 

     Symphony No.3 in Eb major, Op.55 "Eroica"
       베토벤 / 교향곡 3번 '영웅'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당당한 자기 확신이며 거칠 것 없는 외침과도 같은 곡이다. 베토벤은 1802년 고질적으로 앓아오던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거의 들을 수 없었으며, 그해 10월 6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작성하여 두 동생에게 남긴다.
“만일 죽음이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기회를 갖기도 전에 찾아온다면, 아무리 내 운명이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해할 것이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줄 테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베토벤은 이 비장한 유서에 담긴 각오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음악적으로도 1801년~1803년 사이엔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어법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그의 특징적 작법은 매우 건축적이며, 장대한 기상과 함께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들 중 하나인 <영웅 교향곡> 역시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베토벤은 그의 창작 시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시기로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귓병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새로운 창작 시기
물론 참담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가득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처럼 베토벤이 목숨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유서에 담겨 있는 예술가로서의 투쟁과 불굴의 의지는 당시 베토벤의 창작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 무렵에 작곡한 작품들에서는 투쟁, 갈등, 대립이 화해되며 종결되는 양식이 드러난다. 특히 <영웅 교향곡>에서 나타나는 개별 악장들의 확장된 스케일, 50여 분에 이르는 긴 연주시간, 내용적 심화는 습작적인 면모를 보이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요소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나타난 비장한 각오가 <영웅 교향곡> 전 악장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02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804년 봄에 완성되었고 18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의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대중들은 이 곡의 거친 형식미, 광폭하고 야수적인 음향, 긴 연주시간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때부터 자신의 내면을 담은 열광적인 작품들을 미친 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3번 교향곡을 통해 비로소 베토벤만의 세계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작곡을 시작한 교향곡
베토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제 군주정치에서 비롯된 폐해를 누구보다도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베토벤에게 프랑스 혁명의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일으켜 세운 나폴레옹에게 강하게 이끌리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에 따르면 당시 빈 주재의 프랑스 공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이런 의지를 촉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은 베르나도트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위대한 교향곡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화주의의 이상과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이 이 교향곡에 대한 최초의 발상을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영웅 교향곡>의 음악적 실체는 베토벤이 이 작품의 형태를 구상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기존에 완성한 자신의 작품인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시골풍 무곡 WoO 14-7>,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Op.35>을 <영웅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에 인용했다. 이 3개의 곡 중에서 <영웅 교향곡>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작품은 1801년에 작곡한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이에 관해서는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의 주장이 다소 설득력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플로로스는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에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은밀한 찬사가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구심점을 이루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i)의 서사시인 <프로메테오>이다. 베토벤은 이 서사시를 통해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공화주의자’에 비유하면서 나폴레옹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 자신의 새로운 예술을 불멸의 프로메테우스에 빗대고 있다.

1악장 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해 풍부한 악상을 지닌다. 1주제는 저음역의 현악기에 의해, 2주제는 온화한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 같은 음악학자는 1주제의 선율을 ‘영웅 주제’로 명명했으며 음악학자 쾨르너는 이 ‘영웅 주제’를 군대적 심상을 지닌 동기로 간주하였다. 또한 1악장에서는 반음계적인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악장 Agadio assai
유명한 ‘장송 행진곡’ 악장이다. 현악기에 의한 주제는 영웅의 장중한 걸음걸이를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간부에서 나타나는 C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생전의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시 어두운 분위기의 ‘장송 행진곡’으로 마무리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쉼표는 절뚝거리는 영웅의 걸음걸이를 그려내고 있다.

3악장Allegro vivace
3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을 보인다. 가벼운 악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키워가며 무거운 움직임을 보인다. 트리오에서 사용되는 코랄풍의 호른 선율은 위풍당당하며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의 행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4악장 Allegro molto
이 악장의 주된 주제는 베토벤의 작품 <영국풍 시골 무곡> 선율이다. 1주제인 피치카토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평온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후 대위법적 기교들이 얽히면서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닫는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코다가 등장하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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