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가톨릭교리

[영상 교리] (22) 고해성사

by 세포네 2022. 10. 2.
728x90

죄를 고백함으로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하는 성사

 

1.3{"originWidth":506,"originHeight":403,"filename":"1.jpg"}
▲ 우리는 고해성사을 통해 인간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듯 보이지만, 하느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한 신자가 고해성사를 보고 있다. 【CNS 자료사진】

참회와 화해의 성사

여기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잠 못 이루던 사람이 있습니다. 퀭한 눈과 야윈 얼굴. 자신의 잘못을 아프게 뉘우치면서도 쉽게 용기 내지 못합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를 사랑의 눈으로 보시고, 인자하게 귀 기울이시는 하느님! 드디어 그의 입이 열립니다. 그의 등에 땀이 맺힙니다. 잠시 후 칸막이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그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빛을 느낍니다. 자책과 두려움을 감싸주는 온기를 느낍니다. 이제 그의 몸과 마음은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세례받기 전까지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늘 죄의 유혹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죄를 짓게 됩니다. 죄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으로 하느님과 단절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죄는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웃들과도 멀어지게 하고 참된 나 자신과도 떨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단절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는 회개의 성사, 참회의 성사, 화해의 성사입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죄와 잘못에서 우리를 해방해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두가지 핵심 요소

그럼 고해성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크게 두 가지 핵심 요소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회개하는 사람의 일, 곧 통회, 고백, 보속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중개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먼저 통회(痛悔)는 죄지은 것을 아파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다음으로 고백은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할 때는 하느님께 하듯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여야 합니다. 또한, 명료하고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죄를 용서받는 성사인 고해성사를 어려워합니다. 특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사제에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겉으로는 인간인 사제에게 고백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해 사제는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라고 사죄경을 외웁니다. 사제의 사죄경에 대하여 참회자는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죄를 용서받은 다음에는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補贖)을 해야 합니다. 보속은 죄의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갚음입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지만 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에, 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대가를 치러야 하며, 그 최소한의 갚음으로 사제가 준 보속을 꼭 해야 합니다.

고해성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비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용서는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요? 아버지는 이미 용서하셨는데 아들은 그것도 모르고 끝내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리고는 절망 속에서 죽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었을까요? 이처럼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끝없는 자비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음을 돌려 아버지께 다시 가기만 한다면, 우리가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아버지는 먼저 달려 나와 우리를 끌어안고 입 맞춰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화로이 가십시오.” 이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