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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미카엘의 순례 일기] (1)매 순간의 기적

by 세포네 2020. 12. 30.

일상의 거룩함 발견하러 떠나는 순례

 

▲ 갈릴래아 호수.


순례를 위한 설명회 중에 저는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진 순례자들께 이런 이야기를 드리곤 했습니다.

“비록 어렵게 시간을 내고 큰 비용을 마련해서 일상을 떠나 특별한 장소를 향한 여정을 준비하는 중이지만, 사실 순례는 떠남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곧 순례’이며 ‘우리의 삶이 순례의 연속’임을 깨닫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일상이 거룩해지는 것이 순례의 목적’이지요. 순례를 떠나는 우리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갖기보다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때 우리들의 일상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에 한껏 참여하게 되어 하느님의 모양으로서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일상을 떠난다는 기대감으로 들뜬 마음을 가지셨던 순례자들도 이런 말에 공감해주셨습니다. 스스로도 자주 되뇌고 순례자들과 같이 나누었던 이야기지만 순례를 갈 수 없는 요즘에는 제 마음에 더욱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순례 중,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늦잠을 자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의 숨결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소인 데다가, 황량한 광야를 예상했던 신자들에게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시차와 순례의 피곤함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카메라를 들고 호숫가를 거닐며 그곳에서 일어났던 기적과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며 산책하던 중에 마치 호수와 하나된 듯 한쪽에 고요히 자리하고 계신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잔잔한 물결소리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묵주 알을 만지는 그분의 손길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분 곁에 앉았습니다. 묵주기도를 마치시고 한동안 망설이시더니 자신이 심장 전문의라고 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순례 설명회 때 형제님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어요. 많은 순례자가 기적이 일어났다는 장소를 찾아다니고 그 기적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지요. 이스라엘 순례를 준비하면서 저 역시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각진 얼굴에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한껏 담으신 그분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심장만 들여다보면서 몇십 년을 살았는데,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는 모르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일부러 숨을 쉬고 있지는 않잖아요? 숨 한번 쉬지 못하면 죽는 것인데도 지금 내가 숨 쉬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면 우리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사람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숨을 쉬고 있답니다. 살아갈 만큼 필요한 숨을 쉬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너무 놀랍지 않나요? 심장뿐 아니라 우리 몸 모두가 그래요. 심장만 바라보며 수십 년간 일해온 저는 바로 이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셨던 이 자리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순간의 기적도 하느님께서 오묘하게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그 작은 숨의 기적이 있기에 가능한 거겠죠? 기적이 기적을 낳는 것 같습니다. 미카엘씨 말씀대로 우리가 일상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면, 우리의 몸 하나하나가 기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그 거룩함에 한발 다가서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봤어요.”

이야기를 마칠 때쯤 호수 동편에 길게 보이는 골란고원 위쪽으로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만 했다며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향하는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양말과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호숫가 모래 위를 걸으시는 그분의 뒷모습이 마치 오랜 수련을 끝낸 수도자의 형상처럼 보였던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자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기적이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There are only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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