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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교회의 보물창고

(7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러시아 미술관’

by 세포네 2018.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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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그릇에 복음 담아 전해

그리스도교미술도 꾸준히 주목 받아
10~21세기 예술품 40만 점 이상 소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에서 바라본 푸시킨의 동상과 국립 러시아 미술관 전경.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보고 배울 것이 많다. 직선으로 넓게 뻗어 있는 넵스키 대로 주변의 공원과 성당, 미술관,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풍요로움을 안겨 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양한 문화 기관이 밀접한 곳은 예술광장 주변이다. 이곳은 넵스키 대로에서 한 구역 안에 있기 때문에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쇼스타코비치 아카데미 필하모니, 드라마 극장, 러시아 민속 박물관, 러시아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광장 주변에서 편리하게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을 쉽게 만나며 즐길 수 있다. 또한 광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에게 유명한 피의 구원 성당, 카잔 성당, 예르미타시 박물관 등이 있다.

예술 광장의 중앙에는 러시아의 국민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 1799~1837년)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한 광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러시아 민속 박물관과 붙어 있는 러시아 미술관이다.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건물은 그리스 신전처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립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럽에서 이런 양식을 문화 기관의 건축에 즐겨 사용한 것은 건물 안의 예술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러시아 민속 박물관에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러시아인들의 삶과 관련된 많은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덕분에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다. 이런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넘어서 다른 사람이나 인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국립 러시아 미술관’은 1826년에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로시(Carlo Rossi, 1775~1849년)가 설계했다. 원래 이 건물은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생을 위한 궁전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 때 미술관으로 개조해 1898년 개관했다.

초기에는 예르미타시 박물관과 여러 궁전 그리고 아카데미로부터 가져온 러시아 회화 작품을 전시했다. 후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수집한 결과, 오늘날에는 10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40만 점 이상의 예술품을 소장해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다음 가는 규모가 되었다. 미술관 앞에는 아름다운 미하일롭스키 공원이 있어서 그림 감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갈 수도 있다.

 

국립 러시아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바실리 폴례노프의 ‘간음한 여인과 예수’를 감상하고 있다.

 

러시아 미술관에는 오래된 이콘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회화, 조각, 성물, 도자기, 타일 등 러시아인들이 만든 작품이 잘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의 규모나 소장품의 숫자는 같은 도시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지만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뛰어난 작품을 한 자리에서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

미술관에는 일반 회화 작품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뛰어난 성화도 많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금발의 가브리엘 대천사’ 이콘(12세기), 칼 브률로프(Karl Brullov, 1799~1852)의 ‘폼페이 최후의 날’(1833년), 이바노프(Ivanov A. A, 1806~1858)의 ‘군중 속에 나타난 예수’(1837~1857년), 니콜라이 게(Nikolai Ghe, 1831~1894)의 ‘최후만찬’(1863년), 일리야 레핀(Iliya Repin, 1844~1930)의 ‘볼가 강에서 배 끄는 인부들’(1870~1873년), 바실리 폴례노프(Vasily Polenov, 1844~1927)의 ‘간음한 여인과 예수’(1888년)를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 폴례노프가 그린 ‘간음한 여인과 예수’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작품에는 요한 복음(요한 8,1-11)에 나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등장인물이 크게 묘사되어 있어 관람자들은 사건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밀치며 예수님께 데려 왔지만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서 예수님은 고개를 돌려 죄로 범벅이 된 여인과 눈을 마주치신다. 사랑 가득한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시는 죄짓지 말라며 용서를 베푸신다. 사랑 자체이신 분이 죄가 아니라 죄지은 여인을 감싸주신다. 살벌한 단죄와 죽음의 현장에서 자비와 생명이 여인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준다. 러시아 미술관 곳곳에서는 이처럼 소중한 성화를 눈앞에서 보며 자신의 신앙을 키울 수 있다.

예술 광장에 있는 여러 문화 기관은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 넣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이 광장을 거닐면서 세상 한 가운데 있는 성당과 교회 여러 기관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성당과 수도원을 비롯한 교회의 모든 기관은 신자들만을 위해 주어진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 주면서 삶에 지치거나 목마른 사람에게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우리에게 위임된 것이다. 교회 역시 세파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달프게 사는 모든 사람에게 삶의 오아시스가 될 때 비로소 존재 이유가 있다.

오늘날에는 문화 기관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내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문화와 예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교회에서 뿐 아니라 최근까지 교세가 급속히 성장했던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와 신자들은 신앙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서 교회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 묻고 또 물으면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길 가운데 하나가 문화와 예술을 통한 복음 전파일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의 그릇에 복음을 담아 전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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