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터에도 아름다운 수도원 성당 흔적은 남아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도시
옛것과 새것 공존하는 정책
유적 보호 위해 차량도 막아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는 대부분 그에 걸맞은 문화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다. 문화가 사람을 불러들이고 도시의 품격도 드높이는 시대다. 문화생활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문화는 간식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주식처럼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가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도 500여 년 전부터 박물관을 만들어 인류와 교회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세계의 유물과 유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문화 예술품이 현대인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위한 공동 자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티칸 박물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뒤이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만들기 시작했 다. 그 가운데서 가장 활발하게 문화 예술품을 수집하고 전시한 곳이 영국이다. 영국 대부분 도시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다. 이러한 문화 기관은 사람들이 문화를 보고 배우며 성숙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에게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모든 계층의 사람이 즐겁게 배우는 평생 학교’와 같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North Yorkshire) 지역에 위치한 요크(York)는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보인다. 이 도시의 기원은 로마 제국시대였던 서기 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00년부터 1500년까지 요크는 영국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번성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 등이 다른 지역에서 발전하면서 이곳의 중요성은 많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크는 도시 곳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과 유적을 잘 보존해 오늘날에는 관광 도시로 더욱 유명해졌다.
요크는 인구 2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미국인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이 새로운 요크라 하면서 만든 도시가 뉴욕(New York)이다. 따라서 요크는 뉴욕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요크의 구도심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로마 시대에 건립한 성벽 위에 중세의 성벽을 덧쌓아 매우 견고한 모습을 보여준다. 도심을 감싼 성벽의 길이는 5㎞에 이른다. 마차가 다녔던 좁은 길과 1350~1475년 사이에 지은 집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덕분에 성 안에 있는 골목길을 걸으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도시의 중심에는 고딕 양식의 거대한 ‘요크 성 베드로 대성당’(Cathedral Church of Saint Peter in York)이 우뚝 서 있다. 1338년에 건립된 이 성당의 길이는 160m, 폭은 68m, 가운데 종탑 높이는 72m다. 유럽의 북쪽에서 두 번째로 큰 고딕 건축물로 요크 지방의 성공회 주교좌성당이다.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장식과 유리화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성당 부속 박물관에는 전례 양식의 변화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례용품이나 성상 등을 전시했다.
또한 이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 유적지’(St. Mary‘s Abbey Ruins)가 있다. 1155년에 건립된 이 수도원은 영국의 북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번성한 수도원 가운데 하나였다. 16세기 초, 헨리 8세에 의해 수도회가 해체되면서 수도원 건물도 대부분 파괴됐다. 하지만 남아있는 성당의 벽면만으로도 수도원과 부속 성당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다 허물어진 건물조차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며 보존한 덕분이다.
성모 마리아 수도원의 유적지와 인접한 곳에는 ‘요크셔 박물관’(The Yorkshire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은 19세기 초에 건립됐는데, 로마제국 시대와 바이킹 침략 시기, 중세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상설과 특별 전시를 통해 지역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며 수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요크는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오래 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19세기부터는 철도의 중심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3개의 주요 철도 노선이 요크를 경유한다. 철도역을 증축하면서 그 전에 사용했던 역 건물 전체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철도 박물관으로, 내부에 들어가면 실제 철도역인지 박물관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오늘날 요크 시민과 지방 정부는 옛 건물이나 유적지의 가치를 높이 여기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며 활용하려고 지혜를 모은다. 자동차가 구도심에 들어오지 못하게해 수백 년이 넘은 건물을 보존하면서 사람들이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게 한 것도 매우 특이하다. 이것은 도시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자동차의 매연으로부터 보호하고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특별한 정책이다. 요크의 문화 정책은 옛것과 새것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도 어느새 200 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래된 공소나 성당, 수도원이나 학교 등과 같은 건물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교회에서도 새것만을 선호하면 옛 것이 자리 잡을 공간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급변하는 사회와 가치관 속에서 옛것을 지킬 수 있을까? 세월의 흔적이 담긴 이런 건물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며 활용할 것인지가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옛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보존하고 활용한 요크의 문화 정책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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