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차역의 정취, 예술 공간의 깊이를 더하다
긴 열차 많이 운행되며 승강장 협소해져
1939년 역 폐쇄 후 다양하게 사용되다 건물 개조해 회화·조각 등 예술품 전시
1986년 정식 미술관으로 개관하며 개방 인상파 시대 제작된 성화·성상 볼 수 있어
역사와 전통 담긴 옛 교회 건물 활용해야
파리 센 강변의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한 것이다. 오르세역은 도심에서 떨어진 리옹역과는 달리 파리 한가운데 있어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했다.
빅토르 라루(Victor Laloux)가 설계한 이 기차역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춰 문을 열었는데 산업화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됐다. 건물 외부는 석재였지만 내부는 철강으로 꾸몄는데, 에펠탑에 들어간 철재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건물 길이는 175m, 폭은 75m, 높이는 32m에 이른다.
그러나 오르세역이 건립된 후에 긴 열차가 많이 제작돼 승강장이 협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발생하자 1939년부터는 역을 폐쇄했고 이후에 주차장이나 극장, 전쟁포로의 면담 장소로 다양하게 사용하다가 1961년까지 방치했다.
오르세역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이 건물을 유지하기로 최종적인 결정을 했다. 비록 역이 기능을 다했지만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을 보존해 새롭게 사용하기로 했다.
1978년에는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다양한 예술품을 전시하기로 했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미술관으로 꾸미면서 회화 2300여 점, 조각 1500여 점, 기타 1000여 점을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부터 구입하거나 기증받았다. 그리고 1986년 12월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오르세 미술관의 개관을 선포하고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 최고인 루브르 박물관은 센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르세 미술관과 마주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많은 예술품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파 시대 전후의 예술품을 소장하면서 특별한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1979년에 완공한 퐁피두센터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면서 20세기 거장들의 예술품을 전시함으로써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이 됐다. 이 같은 예술품의 세분화 작업과 전시를 통해서 파리의 미술관들은 더욱 특화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불과 30여 년 전에 개관했지만 이미 큰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에서는 드가, 로댕, 모네, 마네, 르느와르, 세잔, 고흐의 뛰어난 원본 작품을 볼 수 있다. 인상파 전후의 회화와 조각품을 포함해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품과 여러 예술품도 잘 전시돼 있다. 이런 작품을 바로 눈앞에서 보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찾는다.
이 미술관에는 단순히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풍경을 다룬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제작된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성화나 성상 또한 곳곳에 전시돼 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밀레의 ‘만종’(1857~1859년)과 같은 작품도 바로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점이 영국 출신 조각가 벤자민 스펜스(Benjamin Spence, 1822~1866년)가 대리석으로 제작한 ‘천사의 속삭임’(1857년경)이다. 천사가 불러주는 천상의 자장가를 들으며 아기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천사는 무릎을 꿇고 양손과 날개를 펼쳐 아기를 보호해 주며 사랑을 속삭인다. 하느님께서는 아기가 탄생할 때 그를 보호해줄 수호천사를 함께 보내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
옛날에 기차가 다니던 선로는 관람객들이 오가는 주요 통로가 됐고, 역의 여러 대합실은 예술품의 전시장이 됐다. 지난날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여 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술과 문화를 맛보려고 붐빈다. 기차역의 거대한 시계도 그대로 보존해 지금은 미술관의 중요한 명물이 되면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사람들은 시계를 보면서 이곳이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람들은 기차역의 흔적을 느끼면서 예술품을 보고, 또 예술품을 보면서 기차역의 모습을 떠올린다. 미술관을 거닐다보면 역을 개조해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 특히 여러 정치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결단에 놀라게 된다.
이 시기의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은 예술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을 존중해 기차역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은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예술가 못지않은 사람이었다. 국가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판단과 결단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예술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오르세 미술관처럼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역이나 공공건물을 도서관이나 헌책방,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도 성소자 감소로 문을 닫은 소신학교를 피정의 집이나 교육관으로 이용하고, 수도원 전체나 일부를 순례자들의 숙소로 내어주며 나누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회에도 오래된 건물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런 건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단순히 실용적인 기준으로만 보면 옛 건물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은 비록 실용성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자체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 그 안에는 역사와 전통과 같은 값진 정신적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모든 것, 건축이나 유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새롭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며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웅모 신부(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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