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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교회의 보물창고

(57)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by 세포네 2018.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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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 있던 ‘지옥의 언덕’에서 지금은 ‘천국의 언덕’으로

이탈리아 초기 고딕 양식 보존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성인 주요 생애와 성경 주제로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장식
지진으로 작품 훼손됐지만 세밀한 자료로 완벽하게 복구

 

상부 성당의 내부 벽면과 천장에 장식된 프레스코화.
 

제2의 그리스도로 존경받는 성인 프란치스코(Francesco, 1181/1182-1226년). 그의 고향이며 주요 활동 무대였던 아시시(Assisi)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인이 살았던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고 곳곳에 그의 흔적이 담긴 유적지와 수도원, 성당이 있다. 아시시에서 움브리아(Umbria) 지역을 내려다보면 작은 마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시시 서쪽은 원래 죄인들의 사형장이 있었기 때문에 ‘지옥의 언덕’이라고 불렸는데, 그곳에 성당과 수도원이 들어서면서 ‘천국의 언덕’으로 바뀌었다. 산 중턱 성당 건물과 맞닿은 곳에는 1474년에 완공된 로제(Loge) 광장이 있다. 열주로 둘러싸인 광장에선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기도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로마네스크와 이탈리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프란치스코 성당(Basilica de San Francesco)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많은 사람을 반겨 준다. 이 성당은 프란치스코가 시성되던 해인 1228년, 마에스트로 야코포 테데스코(Maestro Jacopo Tedesco)의 설계로 공사를 시작했다. 하부 성당을 1230년에 완성해 이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지만 유해의 도굴이나 훼손을 우려해서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지 않았다. 성당 측면에 우뚝 솟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은 1239년에 완공됐다. 상부 성당은 1239년에 공사를 시작해 1253년에 완성했는데 길이는 80m이며 폭은 50m이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가치는 교회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2000년 대희년에 이 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관리하고 있다. 이탈리아 초기 고딕 양식의 건축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상부와 하부 성당 곳곳에는 후기 중세 시대의 중요한 인물인 치마부에, 조토,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체티 등 뛰어나 화가의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성당 벽면을 가득 메운 프레스코 작품의 주요 주제는 성경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주요 생애에서 따온 것이다. 그곳의 프레스코를 보면 성인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얼마나 깊고 참되었는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작품에서는 하느님의 작은 피조물을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한 성인을 만날 수 있다.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는 1818년 하부성당의 바닥에서 재발견됐다. 수도회에서는 하부성당 아래에 작은 경당을 만들고 유해를 제단 벽감에 모셨다. 유해가 들어있는 석관은 벽감에 그대로 노출돼 있지만 도난이나 훼손을 우려해 쇠밧줄로 묶어 놓았다. 순례객들이 이 경당에서 성인의 무덤을 참배하며 기도하는 것은 허용된다.

 

지하 경당의 제단 벽감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유해가 안치된 경당의 아치형 천장은 조명 덕분에 밝게 빛나는데, 이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더 이상 어두운 무덤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빛 속에 머무는 것을 나타낸다. 그가 보여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죽음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의 삶을 비추어 준다. 성인의 고향이며 주요 활동 무대였던 아시시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이 경당이다. 사람들은 성인의 유해를 참배하고 기도하면서 그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되물어 본다.

아시시 성당 옆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는 수도자들의 활동 및 거주 공간과 함께 고문서와 희귀본을 소장한 도서관, 성인의 유물 전시관, 순례자들이 기증한 물건으로 꾸민 박물관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은 이탈리아 최대의 성지 가운데 한 곳이면서 뛰어난 프레스코화를 소장한 미술관이며 수도회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기관이다.

아시시는 그리스도인에게 뿐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소중한 곳이다. 1986년부터 ‘세계 종교인 평화 기도회’가 이곳에서 열리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 해와 2002년에 참석했다. 당시 교황은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와 타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평화를 기원하며 기도를 바쳤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성인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살 때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당 일부는 1997년 9월 26일에 발생한 두 번의 큰 지진으로 무너졌다. 또 성당 건물의 일부가 무너지면서 안타깝게도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상부 성당의 천장도 무너져 내리면서 그곳 프레스코화는 크게 파손됐고 벽을 장식했던 조토와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훼손됐다. 그러자 건축물의 복구와 예술품 복원을 위해 이탈리아와 세계 각국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2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이 사업을 마무리했다.

 

저녁 노을에 빛나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전경.
 

이처럼 완벽한 복구와 복원이 가능했던 것은 기술뿐 아니라 건축과 예술 작품에 대한 세밀한 기록과 자료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기관이나 교회 기관에서는 지난날의 자료를 매우 소중하게 다루며 보관하고 활용한다. 귀한 자료는 여러 복사본을 만들어 화재 등으로 만일의 사태로 인해 소실될 것도 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당이나 교구 혹은 교회 기관에도 자료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작은 공간이라고 있으면 그곳에 소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필요한 경우에 잘 활용할 수 있다. 소중한 것들을 보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없으면 역사적인 자료는 사라지고 만다. 자료실에는 과거의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자료들도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 오늘의 것도 내일이 되면 소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잘 모으고 활용하면 우리 교회는 내적으로 더욱 알차고 풍요로워진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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