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오늘은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탈렌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가 엄청 달라지고 심지어 문제가 크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탈렌트가 말 그대로 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못 가진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부익부빈익빈의 얘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천 팔백 년 앞서
자본주의의 신조를 선포한 것이겠고요. 그러면 하느님은 자본주의의 그 잔인한 하느님이시고, 부자 편을 드시고 가난한 사람은
완전히 깔아뭉개시는 분이 되겠지요. 그런 분이셔서는 안 되고, 그러므로 탈렌트가 돈이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사랑이나 은총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이것도 문제이고 어쩌면 더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는 은총과 사랑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신다는 거니 말입니다. 제 생각에 은사는 달리 주셔서도
은총은 더 주시거나 덜 주시지 않고, 각기 주어진 재능과 그 양은 달라도
사랑은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모 마리아가 중요한 분이시고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중요한 분이셔도
그분들이 우리보다 사랑의 은총을 더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분이시라고 해도 그것은 하느님이 은총을
우리보다 더 주셔서 가득히 받으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은총을 우리보다 더 잘
그리고 많이 받아들이셔서 가득하신 거고, 어머니가 되는 은총을 주신 것은 특별한 은총이기는 해도
하느님이 마리아를 편애를 하신 것이거나
마리아만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실 하느님의 사랑이나 은총은
한 방울이라도 우리를 충만케 하시니 우리가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양적으로는 충만에 문제가 없고, 다만 은총과 은사의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탈렌트란 재주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재주를 주셨고, 같은 능력일 경우에도
더 주시거나 덜 주셔서 차이가 나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술적 능력이나 돈 버는 재주를 많이 주셨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그를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여하라고 주신 것이며, 자기 과시를 하라고 주시거나
자기 배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영광을 위해 주시고
다른 사람 배도 불리라고 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더 느껴야 하고, 능력을 덜 받았다고 서운하게 생각하거나
사랑 덜 받았다 생각지 말고 있는 능력에다가 노력을 더해 사랑을 하면 됩니다. 능력에다가 노력을 더 하는 것은
오늘 비유에서 탈렌트를 더 버는 것입니다. 뛰어난 선수나 예술가들은
선천적인 능력 곧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에 자기의 노력을 더 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예술적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때 저는 제가 모차르트보다 부족하다고 열등감을 느꼈고, 다른 한 편 저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는 제 능력을 자랑삼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등감 때문에도 괴롭고 우월감 때문에도 괴로워 작곡이나 글쓰기를 포기하였는데 수련기 때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가 능력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공동체를 위해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누가 저보고 천부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우쭐하지 않고 그렇다고 선선이 인정합니다. 기실 천부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다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써야 할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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