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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클래식 교향곡

말러 / 교향곡 2번 ‘부활’

by 세포네 201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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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mphony No.2 'Resurrection'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Gustav Mahler 1860-1911
 


 

말러의 두 번째 교향곡은 그의 교향곡 1번 ‘거인’의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교향곡 1번의 피날레에서 인생을 강하게 긍정하며 승리의 음악을 부르짖던 거인은 결국 말러의 음악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장례식의 주인공이 된다. 말러는 거인의 장송 행진곡을 먼저 교향시에 담아 이를 ‘장례식(Todtenfeier)’이라 칭했다. 1888년에 완성된 교향시 <장례식>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1894년에는 교향곡 2번의 1악장으로 사용되었으니, <장례식>은 사실상 교향곡 2번의 출발점이나 다름없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말러의 교향시 <장례식>은 폴란드의 시인 미키에비치가 쓴 동명의 시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미키에비치의 시 ‘장례식’ 속의 주인공 구스타프는 마리라는 여인과 결혼한 후에 자살하게 되는데, 말러는 아마도 자신과 똑같이 구스타프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는 그에게도 찾아오게 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삶과 죽음’, 1916<장례식>을 바탕으로 하는 교향곡 2번 ‘부활’의 의미에 대해 말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1악장을 ‘장례식’이라 칭한다. 그것은 교향곡 1번 D장조의 영웅의 장례식이다. 이제 나는 그를 땅에 묻고 그의 일생을 추적한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왜 사는가? 어찌하여 당신은 고통 받는가? 인생은 단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계속 살기를 원하든 죽기를 원하든, 어떤 식으로든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일생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한 번이라도 해보았다면, 그는 이에 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마지막 악장에 나타난다.”
말러는 예술과 인생을 분리시키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전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했던 말러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말러는 교향곡 2번에서 한 인간의 죽음을 지켜보며 이렇게 묻는다. “인생은 그렇게 헛된 것인가?” 말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해낸다.

혼돈의 삶에서 영생에 이르기까지
처절하고 비극적인 1악장과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2악장은, 말러의 표현대로 ‘영웅의 일생을 한 순간 비추었던 햇빛’과도 같이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행복했던 순간의 이미지다. 두 악장의 성격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말러는 관현악 총보에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적어도 5분 이상 쉬어야 한다는 주의사항까지 첨가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다시 꿈에서 깨어나 현실 생활의 혼돈으로 되돌아온다. 계속 움직이고, 쉬지 않는 소란스러운 삶의 모습. 그것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과도 같이 우리 존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3악장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 현의 부산한 움직임, 클라리넷의 과장된 악센트,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 그것은 ‘오목거울 속에 비추어진 세계’의 모습처럼 비틀어지고 왜곡된 우리 삶의 모습이다. 이처럼 삶은 혼란스럽고 황폐하지만, 말러는 그 속에서도 한 줄기 밝은 빛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근원의 빛’(Urlicht)! 사랑의 신으로부터 오는 찬란한 빛이다. 혼탁한 3악장에 바로 이어지는 4악장에서 말러는 알토의 따뜻한 음성을 빌어 “나는 신에게서 왔으니 신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1악장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암시한다.
5악장 도입부에서 우리는 다시 말러가 ‘절망의 울부짖음’이라 표현했던 충격적인 불협화음을 듣는다. 이때 트럼펫이 ‘공포의 팡파르’를 연주하며 최후 심판의 공포를 일깨운다. 곧이어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의 완전 5도 상행 모티브는 심판의 날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여기에 심판을 알리는 ‘분노의 날’(Dies irae, 죽음을 의미하는 옛 성가)의 첫 네 음 모티브가 부활의 모티브가 결합되어 죽음과 부활을 암시한다. 5악장 발전부에 이르기 직전. 드디어 온 땅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땅이 진동하고,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면서’ 심판 날의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진다. 단9도로 급격하게 뛰어오르는 현악기의 비명과, 공포의 스타카토, 그리고 ‘분노의 날’ 모티브가 마구 뒤섞이며 절규한다. 여기에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간청의 테마가 들리지만, 저 멀리서는 심판의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재현부로 들어서면서 다시 세상은 이상한 침묵에 휩싸이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간신히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말러의 표현을 빌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명의 떨림’이다.
그리고 이제 성인과 천사들의 합창이 부드럽게 등장한다. ‘부활하리라, 부활하리라.’ 말러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심판은 없다. 죄도 없고 정의도 없다. 어떤 것도 위대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작지 않다. 징벌도 없으며 보상도 없다. 압도적인 사랑만이 우리 존재를 비출 뿐이다.” 이제 신의 영광이 나타나고 놀랍고도 부드러운 빛이 우리를 감싼다. 그것은 바로 근원의 빛이다. 그때 말러는 비로소 그가 1악장에서 던진 질문에 답한다. “오 믿으라. 나의 마음이여. 그대는 아무 것도 잃지 않으리라! 그대의 것은 그대의 것. 그대가 본 것, 그대가 사랑한 것, 그대가 맞서 싸운 것. 오 믿으라. 그대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대의 삶과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리고 영생을 암시하는 영원의 모티브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부활 교향곡’의 압도적인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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