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사건을 경축하는 축일이다. 그림은 '동방 박사들의 경배'(터키 카파토니아 동굴 성당 프레스코 벽화, 12세기). |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예수 성탄 대축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축일이다. 가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 명의 동방 박사가 구세주께서 탄생하심을 알고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사건을 경축하는 날이다. 이 사건을 통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이 공적으로 드러났다. 공현(公現)은 그리스어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인데, '드러나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매년 1월 2일에서 8일 사이 주일에 지낸다. 관련된 성경 기록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1).
동방 박사의 방문은 구약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6). 금과 유향은 당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쳤던 예물로, 세상을 비추는 빛(구세주)이 오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시작됐다. 그리스도교 초기 서방교회는, 그날부터 낮이 길어지는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인 12월 25일을 예수 성탄일로 지냈다. 동방교회도 주님 공현과 함께 예수 성탄을 기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집트를 포함한 동방교회가 예수 성탄일로 기념한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은 1월 6일이었다. 예수 성탄일이 두 개가 된 것이다.
4세기 말께 동방교회의 예수 성탄일이 서방교회에 전해지면서 혼동을 막을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혼동을 막고 성탄과 공현을 구분하고자 예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로 나눠 지내게 됐다. 지금도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내는 동방교회가 적지 않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예수 성탄 대축일과 달리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는다. 공현 대축일이 성탄시기에 들어 있으면서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공현은 '그분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들 형상을 구유에 설치한다. 세 명의 동방 박사는 구세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세(재위 440~461)는 그의 강론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의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늘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해주고 있는데, 두 축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벌써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춰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탄 대축일의 중심이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에 있다면,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신성(神性)으로 눈길을 돌린다. 다시 말해 성탄 대축일은 인성에, 공현 대축일은 신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두 대축일은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서로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기원·의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영광·사랑 증거하자
1월 6일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은 아기 예수가 동방박사들을 통해 ‘메시아’임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축일은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나타나심으로써, 즉 주님이 전 세계에 보이심을 공적으로 경축하는 의미라 하겠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아 이 축일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이며,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본다.
■ 기원
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예수 성탄을 기리는 동방교회들의 축일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 기원은 서방교회에서의 예수 성탄 대축일이 생겨나게 된 배경과 비슷한 맥락이다.
예수 성탄 대축일은 구약의 전승과 관계 속에서 축일이 이뤄진 예수 부활 대축일과 달리, 고대 그리스 및 로마 문화권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황제의 탄신 축제나 저명한 이들의 생일 축제를 관습적으로 보냈으며,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로 지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퇴폐적인 태양신 숭배 축제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하는 의미와 함께 ‘승리의 태양’,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12월 25일을 예수 성탄 대축일로 정했다.
마찬가지로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 6일은 이단을 물리치고 이교도들의 습관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 내포돼 있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2세기부터 1월 6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낸 그노시스 주의자들은 세례 때 인간 예수 안에 말씀이 내려왔다고 주장, 예수가 처음부터 참 하느님이라는 전통 신앙을 부인했다. 또 이집트의 경우, 1월 6일 동지(冬至) 축제를 지내면서 승리자 태양신에게 예배하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교회는 이러한 이단과 이교들의 습관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고자 1월 6일을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축일로 제정하게 됐다.
이 축일이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었을 때에는 ‘카나 혼인잔치의 첫 기적’, ‘요르단강 세례’ 등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드러난 사건들도 함께 기념했다고 한다. 서방교회에는 4세기경에 도입됐는데, 주로 동방박사의 방문만을 경축한다.
‘공현’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에피파니아’ 또는 ‘테오파니아’의 ‘스스로를 드러냄’, ‘유명한 존재가 된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하느님의 발현’ 혹은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데 사용됐다.
이런 면에서 동방교회의 주님 공현 대축일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탄생) 또는 예수가 하느님임이 드러남을 뜻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라는 성경구절이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와 주님 공현 대축일에 모두 사용되는 것을 볼 때, 예수 성탄 대축일과 주님 공현 대축일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기원했으나 그 의미와 배경은 같다는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힌다.
전례학자 정의철 신부(서울 중앙동본당 주임)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성탄과 마찬가지로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고있다”며, “차이점을 둔다면 예수 성탄 대축일이 가정의 축제와 같이 하느님 아들이 보잘것 없는 인간으로 태어난 강생의 신비에 더 치중되고 있는 반면, 주님 공현 대축일은 어린 아기의 신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 세상에 밝게 나타났음에 비중이 두어진다”고 했다.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는 지역교회에서는 그 이후 오는 주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성탄시기의 제2부라 할 수 있는 공현시기를 마무리 한다. 유럽교회의 경우 1월 6일이 별도의 공휴일로 지정되고, 바티칸에서도 1월 6일을 고정 축일로 지낼 만큼 주요한 축일로 기념한다. 한국교회 등 그 이외 지역에서는 1월 2~8일 사이 오는 주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 어떻게 축일을 맞을까?
이렇게 주님 공현 대축일은 하느님이 사람으로 태어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수의 신성이 드러남을 동시에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교회 내 전문가들은 “주님 공현 대축일은 아기 예수의 성탄에 감상적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공현된 주님’께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갈 것을 되새기게 한다”고 말한다. 한 본당 사목자는 “우리 모두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 이 세상 모든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빛과 영광과 사랑을 증거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는 신자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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