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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추기경 김수환

<그 후> 6 - 추기경의 눈물

by 세포네 201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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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건' 보니 자괴의 눈물이...
 

   난 눈물이 마른 남자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2005년 12월 중순이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평화신문과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다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사진이 일간지에도 실려 좀 당황스러웠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문의 조작 증거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자 '황우석 신드롬'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정신적 공황상태가 됐다. 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면서도 황 교수의 연구 성과에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사실이 아니기를….'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나 역시 참담한 심정이었다. 한 생명공학자의 연구 성과가 전 세계를 흥분케 하고, 그로 인해 그 과학자는 국민영웅이 됐는데 모든 게 거짓이라니…. 세계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때 흘린 눈물은 자괴(自愧)의 눈물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가슴 아파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실성 결여다. 그 사건은 한 과학자의 윤리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되고 총체적 사회구조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동안 '정직'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 버렸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결과만 내놓으면 탈법과 눈가림은 오히려 무용담이 되는 게 사회 풍조다. 그래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심지어 고귀한 생명까지 짓밟는다. 어쩌다 위법사실이 들통나면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말을 바꾸고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우리나라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빨리빨리 성과를 내는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직이 사라진 사회, 인간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경제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 26-27)고 물으셨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이 풍부한 땅 대신 좋은 머리를 주셨다. 미국 한인사회를 방문하면 "올해 이쪽 고등학교 최우수 성적 졸업생이 한국인이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한국인 학생들이 대부분 반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문제는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즘 신문방송을 보면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기수법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 얘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신뢰와 정직이다. 우리나라 제품 품질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일제(日製, Made in Japan)라면 신뢰하고, 국산(國産)이라면 믿지를 못했다. 일제 품질은 기술력 이전에 그 나라 국민들의 우직하고 정직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고로 우직한 사람은 빠르지는 못해도 정직하다.

 

 난 일본과 독일에서 공부한 덕분에 그 나라 국민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독일인들은 질서의식이 투철하고 매사 철두철미하다. 하다못해 한밤 중에도 교통신호를 철저하게 지킨다.

 

 독일에서 한국인 신부가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어딜 간 적이 있다. 그 신부가 한밤 중 텅빈 사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건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신호등 앞에 서자 뒤따라 오던 차 운전자가 우리 앞으로 오더니 "당신들은 왜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느냐"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독일 제품이 인정 받고, 두 나라가 전후 잿더미 속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비결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정직한 자세다. 인간 관계건 국가 관계건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머리 좋은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정직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 김수환 추기경이 2005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평화신문과 대담을 하던 중 눈물을 쏟고 있다. 추기경의 눈물은 이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애정의 눈물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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