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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

마음을 '툭' 터넣고 초가을을 걷다

by 세포네 2009. 10. 4.

마음을 '툭' 터넣고 초가을을 걷다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가을의 문턱으로 안내하고 있다. 지난주 스쳐간 가을비가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늦더위를 몰아낸 덕분이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이 더없이 싱그러운 10월이 시작됐다.

트레킹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자연을 벗삼아 거니는 것은 어디라도 좋다. 짙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짙은 녹음은 내년을 기약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제 며칠 후면 숲은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올해 푸르름을 만나는 마지막 기회가 이 즈음이다. 정상을 탐내지 않는 대신 느긋한 걸음으로 완상을 즐긴다면 숲이 주는 행복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빠져나오면 양쪽으로 멋진 트레킹 코스를 만날 수 있다. 하나는 치악산 북쪽 구룡사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횡성의 마지막 원시림이라 불리는 병지방계곡이다.

때마침 이번 주말이면 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에서 제7회 안흥찐빵축제가 열린다.
 

하늘마저 지배하는 듯한 금강송
원주와 횡성을 잇는 42번 국도에서 벗어나 구룡사로 향하는 들머리부터 심상치않다. 영역을 다투며 덩치를 키운 숲은 구룡사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까지 밀려들며 짙은 녹음의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굳이 숲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웅장한 자태에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다.

구룡사 숲길의 묘미는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길은 어린아이나 노인도 쉽게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하다. 매표소 뒤 계곡 따라 이어지는 길을 감싸는 숲은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할 만큼 울창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룡교를 지나면 마치 사열하든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양쪽을 빼곡히 메우는 길을 지나게 된다. 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박만한 돌멩이를 깔아놓은 길은 푸른 숲과 어울려 분위기를 더욱 북돋운다. 대부분의 사찰에 이르는 길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눈에 띄는 나무는 아름드리의 금강소나무들이다. 마치 기둥을 박아둔듯 쭉쭉 뻗은 경북 봉화의 춘향목이나 울진의 금강송숲과 달리 여러 수종과 공생하고 있는데, 웅장한 덩치에서 뿜어져나오는 기개 만큼은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이곳 소나무는 황장목이라 불렸는데,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얇고 나무 속이 붉은 것이 특징이다. 황장목이란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하는 목재로 당연히 이 지역은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구룡사 금강송의 절경은 이 길을 따라 약 200m쯤 올라 구룡사의 일주문격인 원통문을 지나면 최고조에 이른다. 한 사람이 품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굵은 소나무들이 참빗살나무·물푸레나무·귀룽나무·층층나무·검팽나무·복자기·쪽동백 등 활엽수를 거느린 채 그 위에서 키재기를 하고 있다. ‘철갑을 두른 듯’ 위압적인 몸통은 지배자의 기개에 어울린다.

원통문을 지나 5분 정도 걸으면 구룡사에 이른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가람 앞 마당에 서면 끝없는 물소리가 발길을 잡아끈다. 구룡폭포라는 작은 폭포로 높이는 3m 정도에 불과하지만 물소리 만큼은 우렁차다. 이를 받치는 구룡소의 쪽빛 물이 숲과 어울려 단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횡성의 마지막 보석 병지방계곡
병지방계곡은 횡성에서 가장 오지에 숨어있는 청정계곡이다. 아직 일부 구간은 비포장도로가 남았고, 어답산(789m)·태의산(675m)·발교산(998m) 등에 둘러싸여 휴대전화도 종종 불통될 지경이다.

최근 외부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난 여름 피서객으로 몸살을 앓기는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은 조용히 흐르고, 숲은 정갈함을 되찾았다.

계곡이 깊은 만큼 승용차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농촌풍경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토종마을로 지정된 병지방리를 가로지르는 계곡 하류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어도 좋지만 초가을에 어울리는 트레킹 코스는 그 안에 숨어 있다. 횡성군청소년수련관 옆으로 이어지는 작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 가량 올라가면 숲길이 시작된다. 포장이 끝나고 밤톨만한 돌멩이로 덮인 길 양편으로는 낙엽송 등 침엽수와 개복숭아나무 등 활엽수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워낙 오지인 까닭에 한 시간을 머물러도 차량 한 대 구경하기 힘들다. 도로 폭이 좁기는 하지만 아무데나 차량을 세워도 별로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병지방계곡 트레킹 코스는 구룡사 숲길과 달리 큰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만큼 깨끗해 연인이나 가족끼리 한 두 시간 정도 호젓한 산책을 겸한 트레킹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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