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살다보면, 마음을 열기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마음을 열었을 때 받을 상처에 지레 겁먹을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약해졌을 때,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아무 공격성 없이 나를 그저 포근하게 감싸줄 그러한 손길을 바랄 때가 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그러한 따스한 손길을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고, 또 유다인들의 공격성에 두려워하며 문을 닫아 걸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에게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무 것도 아닌 한 마디 같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는 다른 사람이 주는 위로와는 다른 점이 있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용서하고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는 위로이고, 가장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의 위로인 것이다. 이렇게 깊이 숙련된 예수님의 위로는 제자들을 기쁘게 한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 같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부활을 믿게 된다.
...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전에 읽었던 복음에서는 기뻐만 한 것이 아니라, 의혹의 마음이나 두려운 마음, 그리고 놀라운 마음 등이 함께 동반했었는데, 이 번 구절에서는 오로지 ‘기쁜 마음’만 표현하고 있다.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느낌이 든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대강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왜일까? 예수님의 파견이 편안하고 안락한 그런 삶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그려보면, 파견의 삶이 어떨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된 길, 포기의 길, 자신의 의지를 버리는 길... 그 길에 선뜻 나서기가 쉽자 않을 것이다.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은 은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성령을 받아라...”
24 ... ‘쌍둥이’ 라고 불리는 토마스... 예전에 바다의 별에서 봉사 할 때, 나를 졸졸 쫓아다닌 중학교 1학년의 쌍둥이 여자애들이 있었다. 나를 쫓아다닌 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고, 이것저것 도와줄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지금 연락은 안 되지만, 가끔 사진을 보면,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집적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의 체험, 그리고 토마스가 체험하고 싶은 모습이 구분되어 읽어진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체험한 것은 교회 공동체 전체의 체험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교회의 체험이 나의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토마스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분을 내 이성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읽어지는 신앙이 아니라, 내가 직접 체험하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경 전체를 알면서도, 감동받은 구절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단 한 구절을 알더라도 그 구절에 감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만수1동성당 김기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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