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에서 바오로는 지식과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는 마치 거울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하느님을 불확실하게 알게 되지만 종말이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확실하게 하느님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되면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게 하느님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종말론적인 가치가 곧 사랑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은사의 유한성과 사랑의 무한성을 언급한 후 13절로 사랑의 찬가를 마무리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종말에 사라질 일시적인 유한성을 지닌 은사들과는 달리 무한성을 가진 종말론적인 가치인데 그 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12, 31b에서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길’은 사랑의 길이다.
따라서 사랑은 모든 은사의 바탕이 된다. 어떤 교우가 아무리 뛰어난 은사를 소유했다 해도 사랑이 수반되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모든 은사들은 사랑에 의해서 통제를 받아야 하며 사랑으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사랑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리 놀라운 성령의 은사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부활 : 1코린 15장>
오늘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를 믿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은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님의 시신을 싸고 있었던 수의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과학과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다.
사도 바오로는 처음에는 부활을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여겨 예수 부활을 믿는 이들을 박해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 20)라는 비과학적인 주장을 폈던 것이다.
1세기 코린토 교회 신자들 역시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15, 35)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바오로는 신자들 가운데 전해진 신조(信條)에 따라 예수 부활을 믿으면서도 죽은 이들의 부활만은 믿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스테파나스와 포르투나투스와 아카이코스로부터 전해 듣고(1코린 16, 17) 1코린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부활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15, 12)
코린토 신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리스의 영육 이원론에 사로잡혀 영혼의 불멸은 받아들였으나 썩어 없어질 비천한 육신의 부활만은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신조를 사용했다. 바오로가 예루살렘 교회, 다마스쿠스 교회, 안티오키아 교회로부터 전해 받아 코린토 신자들에게 전해 준 신조가 3~5절에 나타나 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케파와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다(5절)는 말로 끝이 나는 이 신조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신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입증하기 위해 또 다른 근거를 제시했다. 즉,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운명공동체인데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서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모순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12, 13절)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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