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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정명조 주교 선종 이모저모 "

by 세포네 2007. 6. 10.
정명조 주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주교단과 사제들. [백명민 ]

 

"목자 잃은 슬픔을 천상 재회 희망으로"
   부산교구민들은 슬픔의 눈물과 기쁨의 눈물로 목자 정명조 주교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 드렸다.


 4일 주교좌 남천성당에서 봉헌된 교구장 정명조 주교 장례미사에는 정 주교가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데 대한 슬픔과 정 주교가 병고 속에서 그토록 뵙길 원했던 주님 얼굴을 뵈러 마침내 하늘나라에 들어간 데 대한 기쁨이 교차했다. 교구민들은 "멋지게 살다 가시는 님을 멋지게 보내드린다"며 목자 잃은 슬픔을 천상(天上) 재회의 희망으로 반전시켰다.


 ○…김수환 추기경은 장례미사 강론에서 임종 엿새 전(5월 26일) 부산에 내려와 정 주교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이튿날 병실에서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함께 봉헌한 사실을 언급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부럽기까지 했다"고 감탄.


 김 추기경은 장례미사 전날 빈소에 들러 조문한 뒤 유리관 속에 안치된 정 주교의 잠든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젖기도. 김 추기경은 빈소를 빠져나가면서 "정 주교는 각별한 동생 같은 성직자였다. 병자성사를 주고 올라간 지가 일주일도 안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 주교의 투병 과정을 지켜본 사제들과 측근들은 "고통이 심했을 텐데도 평소보다 더 밝게 웃어 환자라는 사실을 깜빡 잊을 정도였다"며 "준비를 너무나 잘 하시고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임종을 지켜본 홍보전산실장 김경욱 신부는 "한 번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던 분인데 임종 1시간 전쯤 '힘드시죠?"하고 물으니까 그때서야 처음 '응, 좀 힘들다'고 말씀하셨다"며 "마지막 숨을 크게 내쉬고 눈을 감으시는 순간 마치 영혼이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 부산 카리타스자원봉사단 단장 하경철(람베르또)씨는 "주교님은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도보성지순례(5월 24일)에 참가하시려고 했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함께 걷지 못했다"며 "그 병고 속에서도 도보 순례자들에게 시루떡을 보내주신 자상한 성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정 주교 조카 정충근(베네딕토, 49)씨는 "가족들에게 겉으로 표현은 잘 안하셨지만 속정이 매우 깊은 분"이라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던지 가족들 면회를 막아 투병기간 중 단 한 명도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정 주교는 그동안의 강론과 기고문 등을 모아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제목으로 6월 18일께 강론집을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이 책은 결국 유고집 형태로 나오게 됐다.

 ○…부산교구는 "장례는 소박하고 검소하게 치르라"고 한 정 주교 유언에 따라 조화(弔花)와 조의금을 사절하는 등 장례를 최대한 간소하게 치렀다. 교구는 주교회의 의장 장익 주교와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조화 2개만을 받아 빈소 양 옆에 놓았다.

 또 교구는 고인의 시신을 유리관 속에 모셔 일반에 공개했는데 조문객들은 "주교님 얼굴이 어쩌면 저렇게 평화로우냐"며 감탄했다.

 정 주교는 장묘문화 개선 차원에서 자신이 계획하고 완공한 납골당(하늘공원)에 안치되길 원했으나 측근들이 매장을 간곡하게 권유했다는 후문. 정 주교는 "내가 만들어 놓은 납골당에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신자들이 뒤따라 들어오겠느냐?"며 화장 후 납골당 안치를 원했으나 교구청 사제들이 "그것만큼은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고.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전상해 명예기자  jsh@pbc.co.kr

 

"주교님, 잘 가이소." 고인의 염습(殮襲)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정 주교 유족들.

 

장례미사에서 고별사가 낭독되자 수도자와 신자들이 슬품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 주교 영전에 허리 굽혀 작별인사를 하는 신자들.

 

황철수 주교가 양산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하관예절을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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