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로 공생활 시작한 '하느님 아들'
예수님의 공생활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시작된다(루카 3, 23). "세례자 요한은 망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굳이 세례를 받으신다. 이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마태 3, 13-17)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하느님 아들로서 드러난 예수님의 공현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535항).
8일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세례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성화 2점을 통해 예수님의 영세 의미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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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트로 페루지노, '그리스도의 세례'
(페루지아 움브리아 국립 미술관)
예수님의 영세 장면을 묘사한 성화들은 일반적으로 예수께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으며, 세례자 요한이 조가비나 접시 혹은 맨 손으로 예수의 머리 위에 물을 붓고 있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먼저 르네상스의 거장인 라파엘로의 스승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8/1450?~1523)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그림 공부를 한 페루지노는 단순한 배경 처리를 통해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뛰어난 화가로 초기 르네상스에서 전성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가교역을 한 인물이다.
페루지노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의 후기(1512~1517년)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페루자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의 제단화 가운데 한 작품으로 피렌체 화풍의 인물 표현 양식과 움브리아 화풍의 공간 구조를 혼합한 독창적 화면 구성법을 보여준다.
작품은 세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 형태로 화면 중앙에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그 옆으로는 천사들이 세례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흰 비둘기 형상으로 날개를 활짝 편 채 예수님 위로 내려오고 있다. 성경은 이 순간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6; 마르 1, 11; 루카 3, 22)하는 소리가 울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오직 하느님의 의로움을 행하시고, 사람들을 돌보다 묵묵히 고난을 받을 하느님의 종이 되셨다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고백이다.
성령을 비둘기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즉 예수님 영세 때 성령께서 함께 하셨음을 모두가 보았다는 객관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성령을 비둘기 형상으로 묘사한 것은 유다인들이 전통적으로 비둘기를 이스라엘과 동일시해 이 세상에 내려오는 하느님 사랑을 가리키는 영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 주위에는 천사들이 성령을 호위하며 예수의 세례를 목격하고 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림의 배경은 요르단 강가의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이탈리아 페루지아의 푸르른 산야를 보여준다. 페루지노의 작품 하단에는 이를 모를 한 식물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신체의 병을 치료하는 약초를 대비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통해 온 인류가 영적으로 치유되고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 요아킴 데 파티니에르, '그리스도의 세례'
(1515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서양 미술가로서 처음으로 풍경화를 전문으로 그린 네덜란드 화가 요아킴 데 파티니에르(Joachim de Patinir, 1485?~1524)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페루지노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다.
파티니에르가 1515년에 완성한 '그리스도의 세례'(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소장) 작품은 풍경화가로 성공한 그의 독특한 기법이 잘 드러난다. 파티니에르는 화면 가운데에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거대한 유령같은 바위와 숲과 강을 생생하고 음침하게 묘사해 주목받기 시작해 성공을 거뒀고, 많은 후대 화가들이 그의 양식을 모방했다. '그리스도의 세례'에도 작품의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큰 바위산이 화면 가운데에 있고, 예수님 주변의 무성한 풀과 강가를 톱니모양처럼 꾸불꾸불하게 묘사해 놓았다.
파티니에르의 작품은 가로가 긴 직사각형 구도를 하고 있다. 파티니에르의 작품 역시 '그리스도의 세례' 성화에 대한 일반적 구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은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다양하게 조합시켜 독창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림 한 가운데 하단에는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강둑에 옷을 벗어 놓고 요르단 강에 들어가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다.
예수님께서 벗어놓은 푸른 빛의 옷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삼위일체이신 성자께서 '고난의 종'이라는 당신 사명을 수락하고 수행하기 위해 알몸이 되시듯 기꺼이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사랑으로 죽음의 세례를 받으셨음을 드러내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요르단 강에 들어가지 않고 강둑에서 무릎을 꿇은 채 맨 손으로 물을 떠 예수님 머리 위에 붓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요르단 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예수님 세례가 새로운 창조의 서막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구름 사이로 성부의 형상과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을 한 채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파티니에르는 성부와 성자, 성령을 그림 중앙에 일직선의 완벽한 축으로 배치시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심을 드러냈다.
그림 왼편 뒷쪽의 한 무리는 세례자 요한이 군중들에게 세례 받을 것을 설교하는 장면이다. 세례자 요한은 군중들에게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 11)고 설교했다.
세례자 요한은 오른손을 들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바로 저 분이시라며 요르단 강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곧 예수님을 따를 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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