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Daniel)◀
신분 : 시부, 주행자
연대 : 409-493년
유프라테스의 사모사타(Samosata) 근교인 마라타(Maratha) 태생인 성 다니엘은 12살 되던 해에 가까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원장과 더불어 안티오키아(Antiochia)를 여행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기둥 위에서 고행하고 있는 성 시메온(Simeon, 1월 5일)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 후 성 다니엘은 원장이 서거한 뒤에 원장이 되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성지를 순례하였으며, 그 후 그는 성 시메온 주행자(柱行者)와 같은 고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근교의 한 지점에서 기둥 위에 올라가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근교에 세운 기둥 위에서 33년 동안 살았는데, 황제 레오 1세는 그를 위해 단을 갖춘 여러 기둥을 건설해 주었고, 그를 서품하기 위해 잠시 내려오라는 요구까지 물리치자 성 겐나디우스(Gennadius)는 기둥 위로 가서 그에게 사제 서품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465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대화재가 발생하리라 예언했으며, 그의 성덕과 치유 은사는 매우 유명하였다.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와서 설교해 주기를 청하면 그는 자신의 기둥 꼭대기에서 설교하여 많은 감명을 주었다. 또한 그는 황제 레오 1세와 제노의 자문관으로도 활약했고, 그리스도단성론(Monophysitism) 이단을 지원한 황제 발리스쿠스를 단죄하고 에우티키아누스(Eutychianus)를 지원하기 위하여 꼭 한 번 그의 기둥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성 다니엘은 기둥 위에서 운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 기둥 밑에다 안장하고 공경해 왔다.
▶다마소 1세(Damasus I)◀
신분 : 교황
연대 : 305?-384년
에스파냐 혈통을 가진 성 다마수스(또는 다마소)는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난 듯하고, 사제였던 자신의 부친 교회에서 부제가 되었다가, 366년의 치열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교황 선출에서 패배한 반대파는 우르시누스(Ursin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 분쟁은 반대파가 비극적 종말을 맞았으며, 우르시누스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유배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평정되었으나, 다마수스 교황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늘 도전하였다. 그의 선출은 로마 시노드(Synod of Rome)에서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다마수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체도시우스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그도 그의 재임 기간에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회가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서학자이던 다마수스는 성서의 정경을 발표하였고, 374년의 로마 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서를 명시하는 업적을 쌓았다. 유명한 성서학자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비서였다. 그러므로 다마수스는 히에로니무스에게 성서 주석을 비롯하여 불가타 성서 번역을 부탁하였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룩한 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또한 그는 교회 중의 최고 교회로서 로마를 선언하였고, 카타콤바와 성소, 순교자들의 무덤을 복원하였으며, 이곳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위대한 교황이었다.
▶바르사바(Barsabas)◀
신분 : 수도원장, 순교자
연대 : 342년
페르시아 태생의 성 바르사바는 수도원장으로서 12명의 그의 수도승들과 함께 페르시아 사산왕조의 사푸르 2세 왕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이로 유명하였다.
▶빅토리코(Victoricus)◀
▶젠시아노(Gentian)◀
▶푸시아노(Fuscian)◀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푸시아누스(Fuscianus)와 성 빅토리쿠스(또는 빅토리코)는 성 퀜티누스(Quentinus) 당시에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된 로마(Rome)의 선교사들인데, 이 성인들은 주로 모리니족들을 회개시키는 일을 전담하였다. 성 빅토리쿠스는 불로네, 성 푸시아누스는 테루안(Therouanne)에 근거지를 두고 인근 지방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는 프랑스 지방의 많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들이 성 퀜티누스를 만나러 아미앵(Amiens)에 왔을 때 박해가 있음을 알았다. 그 지방에서 성 겐티아누스(Gentianus)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이분 역시 몰래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이 지방의 집정관 릭시오바루스는 이 세 분을 찾아내어 겐티아누스는 현장에서 목을 베었고, 다른 두 성직자는 아미앵으로 끌고 가서 참수하였다. 이들의 순교 이후 릭시오바루스는 미쳤다고 한다.
▶사비노(Sabinus)◀
신분 : 주교
연대 : 420년
지역 : 피아첸차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주교인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는 일찍부터 교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는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에 의해 멜레티우스(Meletius) 이교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었었다. 그는 또한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절친한 친구로서 정기적으로 성 암브로시우스의 저작물 초본을 받아 읽은 후 비평 및 의견을 제시하는 글을 써 보냈다. 그는 381년 아퀼레이아(Aquileia)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를 단죄하는데 앞장섰고, 9년 뒤에는 밀라노 교회회의에서 요비니아파를 격렬히 비난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하였다.
▶트라손(Trason)◀
▶폰시아노(Pontian)◀
▶프레텍스타토(Praetexta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02년
성 트라손과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그리고 성 프라이텍스타투스(Praetextatus)는 이탈리아 로마(Rome)에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돕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성 프라이텍스타투스는 프락텍스타투스(Practextatus)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