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1월 19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1. 19.
728x90

나르세스(대)(Narses the Great)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73년

지역 : 아르메니아

 

   네르세스(Nerses)로도 불리는 성 대 나르세스는 성 대 이사악(Isaac, 9월 9일)의 아버지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태어났다. 왕가의 후손인 그는 어느 공주와 결혼하였지만, 그 얼마 뒤에 아내와 사별함으로써 궁중 관리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그 후 사제로 서품되었고, 353년에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아르메니아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카이사레아에 있을 동안에 배운 원칙에 따라 교구의 개혁을 착수하고, 365년에는 제1차 전국 시노드(Synod)를 소집했고, 병원을 개설하는 한편 수도원들을 크게 격려하였다. 한편 국왕이 왕비를 살해한 사건을 성 대 나르세스가 문제를 삼은 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 에데사(Edessa)로 추방되었으며, 왕이 전투에서 죽은 뒤에야 귀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임자로 선임된 팝(Pap)이란 사람이 그를 독살하였다.

 

막시모(Maximus)

신분 : 순교자

연대 : 255년

 

  로마(Rome)의 사제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바를라암(Barlaam)

신분 : 순교자

연대 : 4세기

 

   성 바를라암은 안티오키아(Antiochia) 근교의 마을에 사는 노동자였는데, 우연히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발설하게 되어 오랫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처형되었다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고문을 당할 때에도 한 마디의 불평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늘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런 자세를 보고 화가 난 형리들은 그를 고문대 위에 올려놓고 돌림으로써 뼈를 으스러트렸다. 그래도 그는 인내하므로 칼과 도끼로 그를 처형하였으나 신음 소리조차 입 밖에 내지 않고 순교하였다.

 

세베리노(Severinus)

엑스수페리오(Exsuperius)

펠리치아노(Felician)

신분 : 순교자

연대 : 170년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와 성 엑스수페리우스(Exsuperius) 그리고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에 프랑스의 비엔(Vienne)에서 순교하였다.

 

아자(Azas)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아자는 로마 군인으로 150여 명에 이르는 동료들과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시작된 박해 때에 이사우리아(Isauria)에서 순교하였다.

 

에르멘부르가(Ermenburga)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700년

지역 : 민스터

 

   머시아(Mercia)의 왕 미르왈드(Merewald)의 부인인 성녀 에르멘부르가는 성녀 밀드레다(Mildreda), 밀드지타(Mildgitha), 밀부르가(Milburga)의 어머니이다. 돔나 에바(Domna Ebba), 돔네바(Domneva), 에르멘베르가(Ermenberga)로도 불리는 그녀는 그녀의 삼촌인 켄트(Kent)의 왕 에그베르트(Egbert)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기증한 타넷(Thanet) 섬에 민스터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오바드야(Obadiah)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연대 :

 

   성 오바드야(Abdias, 또는 오바디야)는 구약성서 12 소예언서의 하나인 오바드야서에 등장하는 예언자이다. ‘야훼를 섬기는 이’ 또는 ‘야훼의 종’을 뜻하는 오바드야는 히브리어에서 흔한 이름으로, 구약성서에서는 다윗 시대부터 유배 이후 시대까지 여러 사람이 이 이름으로 불린다. 바빌론 탈무드에서는, 북왕국 아합 시대에 궁내 대신으로 있으면서, 이세벨 왕비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에 백 명을 구해 준 오바드야를(1열왕 18,3-4) 이 예언자로 지목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소예언서를 열둘로 고정시키려고 말라키(Malachias)서처럼 주인 없이 전해지는 예언을 오바드야라는 이름으로 묶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할 개연성도 별로 크지 않다.

   성 오바드야는 실제 예언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는 성전에서 봉직하던 전례 예언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대환난이 일어난 뒤, 폐허로 변해 버린 성전에서 참회와 탄원의 전례가 거행될 때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예언서에 수록된 신탁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짧은 21절로 된 오바드야서에서 예언자 오바드야는 억압자 앞에서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나라가 바빌론에게 약탈을 당하고 망해가고 있다. 이때 오바드야가 나서서 형제 나라 에돔(창세 25,19-28; 36,1 참조)이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대신 부자들을 편들었다고 비난한다. 에돔은 사태를 즐기고 있었다. 땅을 정복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약탈과 박해와 살인에 동참하고 있었다. 선택받은 사람들과 보호를 청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못된 짓을 복수심으로 행하고 있었다. 과거의 불목을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2열왕 8,20-22 참조). 에제키엘 예언자가 말하는 것처럼, 에돔은 ‘영원한 미움’을 간직하고 있었다(에제 35,5).

   그 외에도 에돔인은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자기네를 이길 자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3절). 자기네 지혜와 자기네 전사들의 용맹성을 내세우면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오바드야 예언자는 동맹국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공격을 당하는 형제 나라 에돔에게 등을 돌릴 때(5-9절), 그 지혜가 무지로, 그 용맹성이 비겁함으로 변하리라고 말한다. 오바드야는 유대 왕국도 무죄하지 않고 그래서 그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겪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역사상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형제국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에돔에게 큰 잘못이 있음을 역설한다.

 

크리스피노(Crispin)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4세기

지역 : 에키자

 

   성 크리스피누스(Crispinus, 또는 크리스피노)는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에키자 교구의 주교였다. 그는 막시밀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참수당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특별히 모자라빅(Mozarabic) 전례의 성무일도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