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오면 죽은 목숨이라 했던 피 맺힌 땅…이제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
주막거리가 북적였다. 이곳은 용인과 안성, 원삼 등지에서 ‘천주쟁이’들을 잡아 온 포졸들의 중간 집결지, 죽산 관아가 지척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른 포졸 하나가 오라에 묶인 죄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돈을 내. 네놈들은 저 고개만 넘으면 죽은 목숨이야. 돈을 내면 풀어줄게.” “안된다고? 돈이 없다고? 이 고약한 놈들. 너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몽둥이질, 발길질 온갖 매질이 시작됐다. 혹시 풀려날까 호송 행렬을 뒤따른 죄인의 가족들이 그 모습에 땅을 쳤다. 두드렸다. 죽산성지에서 6km 떨어진, 오늘의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죄인들이 두들겨 맞고 가족들이 안타까움에 땅을 두들겼다 해 ‘두둘기’ 마을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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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만개한 죽산순교성지 성모신심의 길. 사진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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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만개한 죽산순교성지 성모신심의 길. 사진 이승환 기자 |
‘잊은 터’ 죽산
중부고속도로 일죽 IC를 나와 안성 방향으로 300미터정도 가면 ‘죽산성지’라 새겨진 큰 돌을 만난다. 성지 초입이다. 이곳에서 성지까지는 800여 미터. 포졸들에게 잡혀 와 죽산 관아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초주검 된 신자들이 처형터로 향하던 그 길이다. 죽주산성을 마주하는 이곳은 고려 때 원나라 군사가 진을 친 곳이어서 ‘이진(夷陳)터’라 불렸는데, 박해 시기 ‘잊은 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해서였다.
두둘기와 잊은 터의 아픔을 간직한 이곳은 이제 성스러운 땅,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다. 주차장 한가운데 예수성심상이 두 팔 벌려 순례자를 맞이한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을 따라 걷자 ‘성역’(聖域)이라는 현판 걸린 커다란 대문이 세워져 있다. 속(俗)의 세계를 벗어나 성스러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푸른 잔디밭이 널따랗게 자리한 성지 광장. 양옆으로 돌 묵주알이 줄지어 서 있고 장미 넝쿨이 반원 모양으로 묵주알을 감싸고 있다. 묵주기도의 길 곁은 장미 터널이다. 5월 성모성월의 끝 무렵이면 장미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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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순교성지를 찾은 한 신자가 제대 앞에서 무명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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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묘역 정중앙에 조성된 무명순교자 묘. 사진 이승환 기자 |
복자와 하느님의 종 그리고 무명 순교자들, 이곳에 잠들다
성모신심의 길 끝에 놓인 피에타상을 지나면 ‘순교신심의 길’이다. 죽산에서는 병인박해를 전후해 수많은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병인박해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해도 24명. 순교신심의 길에는 24명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봉분 그리고 한가운데는 보다 큰 둥근 봉분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자리하고 있다.
죽산에서의 박해는 잔혹했다. 부자(父子)를 같은 날 함께 처형하는 것을 국법이 금했음에도 순교자 여정문(1867년 순교)은 아내와 15살 아들, 순교자 최성첨(1868년 순교)은 아들과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순교신심의 길에는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의 묘도 자리하고 있다. 병인박해를 피해 4형제를 데리고 충북 진천 절골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부부는 1868년 절골에 들이닥친 죽산 포졸들에게 쫓기게 된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채 쫓기던 오 마르가리타는 산중에서 잡히고 박경진 또한 숨어있던 집 주인의 밀고로 붙잡혀 죽산 관아로 끌려온다. 모진 고문이 이어졌지만 부부는 배교하지 않고 그해 9월 함께 순교한다.
꽃이 지지 않는 성지
죽산은 꽃이 지지 않는 성지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와 영산홍, 조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장미가,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 겨울에는 눈꽃과 함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꽃을 대신한다. 참혹했던 피의 순교가 이뤄진 땅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믿음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에 감사한다. 피의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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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광장에서 바라본 죽산순교성지 대성당과 성모상. 사진 이승환 기자 |
“천주님께서 안배하신 대로 순명하여라”
이곳을 다녀간 순례자들이 봉헌한 초가 가지런히 놓인 현양탑을 돌아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다. 야트막한 오르막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14처 길은 성지마당에서 보면 순교자 묘역을 감싸 안은 모양이다. 순교자들이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십자가의 길 1처 앞에 섰다. 하느님의 종 박경진 프란치스코가 옥중에서 동생 필립보와 아들 안토니오에게 보낸 편지 글을 묵상한다.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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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묘역을 감싸안은 모양으로 들어선 십자가의 길 14처. 사진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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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만개한 죽산순교성지 성모신심의 길 |
◆ 순례길잡이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가 심문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친 순교성지다. 순교자묘역에는 복자 박경진(프란치스코)과 오 마르가리타 그리고 하느님의 종 8명 등 24위 순교자의 묘와 무명순교자 묘가 조성돼 있다.
- 미사 : 화~주일 오전 11시
- 순례 문의 : 031-676-6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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