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나선 순례길, 뜨거운 햇살 아래 순교 신심이 자란다
▲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 곳곳에 스며든 순교자들의 순교신심을 따라 걷는 길로 교황청 공식 국제순례지이기도 하다. |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코로나19로 휴가 떠나기가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산과 계곡, 바다와 캠핑장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사람들이 북적대는 피서지보다 나 홀로 또는 가족 단위로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피정에 참여하거나 도보 순례를 떠나기를 추천한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도심 속 순례길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도심에 있는 대표적 순례길로 2018년 9월 교황청 공식 국제순례지로도 지정됐다. 한국 교회 첫 신앙 공동체와 사목지, 순교지, 순교자 묘소와 사제 양성 못자리인 신학교 등 순례지 24곳을 세 코스로 나눴다. △말씀의 길(명동대성당~가회동성당 9개소, 8.7㎞) △생명의 길(가회동성당~중림동약현성당 9개소, 5.9㎞) △일치의 길(중림동약현성당~삼성산성지 8개소, 29.5㎞)로 조성된 순례길에서 박해의 아픔과 선조들의 굳은 믿음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빌딩 숲과 한옥을 오가며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서울의 역사와 도시의 아름다움도 엿볼 수 있어 신자는 물론 비신자, 걷기 동호회원들도 많이 찾는다. 지방에서도 지하철이나 철도를 이용해 아침 일찍 오면 당일 코스도 가능하다.
대구 중구에도 특별한 ‘골목 투어’ 코스가 있다. 그중 관덕정 순교자기념관~성 유스티노 신학교~성모당~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으로 이어진 2.1㎞의 ‘남산 향수길’은 대구 지역 천주교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진 붉은 벽돌담에는 1900년 초 계산성당 전경과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 사진 등 대구 지역 천주교 100년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두 개의 종탑이 인상적인 계산 주교좌성당과 교구 설립 초기에 사용한 유물을 모은 유물관도 만날 수 있다. 인근 관덕정 순교성지는 이윤일(요한) 성인을 비롯한 많은 순교자가 치명한 성지이다. 루르드 성모님을 모신 대구대교구청 성모당은 2009년 성모 순례지로 지정된 성모 신심의 중심지다.
부산 수영 장대 순교성지는 경상 좌수영이었던 곳으로 병인박해 때 동래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 등 8명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이곳에서 14㎞ 떨어진 오륜대 순교자성지까지 걸으며 순교 신심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륜대 순교성지는 순교자 8위 묘소와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 성당이 있다. 성지 내에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이 조성돼 길을 따라 걸으며 신앙을 다지기 제격이다. 성지 내 순교자박물관도 신앙 유산의 보고다.
▲ 수원교구 손골성지에 세워진 오메트르 성상. 디딤길을 걷다보면 교구 내 성지와 성당들을 만날 수 있다. |
자연 속 순례길
제주하면 ‘올레길’을 떠올리지만, 올레길 못지 않은 천주교 순례길이 있다. 제주교구가 제주를 찾는 신자들을 위해 조성한 순례길은 6개 구간 68㎞에 달한다. 6개 순례길은 제주도 천주교회 역사와 절묘하게 맞물려 저마다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느낌과 체험을 안겨준다. △김대건길(고산성당~자구내포구~용수성지~신창성당, 11.5㎞) △정난주길(대정성지~모슬포성당, 7㎞) △김기량길(김기량 순교현양비~조천성당, 8.7㎞) △하논성당길(서귀포성당~하논성당~면형의 집~서귀포성당, 10.6㎞) △신축화해길(황사평성지~관덕정~중앙성당, 12.6㎞) △이시돌길(성이시돌센터 일대)을 걷는 코스다. ‘천주교 순례길’ 누리집(http://peacejeju.net)에서 순례 코스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디딤길’은 수원교구 내 성지 14곳과 거치는 성당을 연결하는 78개 코스 총 407㎞에 대장정 순례길이다. 수리산성지, 남양성모성지, 하우현성당, 남한산성성지 등 교구 내 성지 곳곳을 돌아볼 수 있다. 디딤길 네이버 카페(cafe.naver.com/didimgil)에서 각 순례 코스 및 순례에 관한 다양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내포 지역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보 순례지 가운데 하나다. 내포는 124위 복자 가운데 49위가 태어나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순교한 지역이다. 솔뫼성지~합덕성당~신리성지 11㎞구간을 걸으며 순교 신심을 되새겨보자.
경북 칠곡군 동명면 일대에 조성된 ‘한티가는 길’은 가실성당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46.5㎞에 이른다. 산티아고와 한티의 합성어로 ‘한티아고’로도 불린다. 박해 시기 신앙 선조들이 걸었던 길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한 한티가는 길은 ‘그대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다섯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1구간 돌아보는 길은 가실성당∼신나무골 10.5㎞ △2구간 비우는 길은 신나무골∼창평저수지 9.5㎞ △3구간 뉘우치는 길은 창평저수지∼동명성당 9㎞ △4구간 용서의 길은 동명성당∼진남문 8.5㎞ △5구간 사랑의 길은 진남문∼한티순교성지 8.1㎞로 조성됐다.
종교 문화유산이 흐르는 순례길
전주교구와 지역 종교계가 함께 만든 아름다운 순례길은 신앙은 물론 자연과 어우러진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천호성지와 초남이성지, 나바위성지, 수류성당 등 천주교 관련 성지와 성당은 물론 미륵사지, 금산사, 송광사 등 이웃 종교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총 240㎞의 9개 코스로 △제1코스(28.0km) 한옥마을~송광사 △제2코스(26.5km) 송광사~천호 △제3코스(36.5km) 천호~나바위 △제4코스(27.5km) 나바위~미륵사지 △제5코스(29.3km) 미륵사지~초남이 △제6코스(24.0km) 초남이~금산사 △제7코스(19.7km) 금산사~수류 △제8코스(21.0km) 수류~모악산 △제9코스(27.5km) 모악산~한옥마을 등으로 이어진다. 2년여 동안 6만여 명의 순례자가 다녀갈 정도로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 전주교구와 전북 지역 종교계가 조성한 아름다운 순례길 8구간의 시작지인 전주교구 수류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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