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기도하며 완성될 하느님 나라 기다려야
▲ 예수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밤에는 올리브 산으로 가서 묵으셨다. 사진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인 황금 돔 사원(이슬람교 대사원) 쪽에서 본 올리브 산 전경. 원 안은 올리브 산 중턱 주님 눈물 성당 모습. |
앞에서 살펴봤듯이 루카복음은 21장 5절부터 계속해서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21,5-6), 재난의 시작(21,7-19),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21,20-24),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관한 말씀(21,25-28)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그 마지막 부분으로 무화과나무가 주는 교훈에 관한 말씀과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무화과나무의 교훈(21,29-33)
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50회 가까이 언급되는 대표적인 성경 속 식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는 것은 이 나무에 대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유와 관련된 예수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21,29-31)까지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비롯한 다른 나무들에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이미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표징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주목할 구절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입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마태 24,33; 마르 13,29) 성경학자들은 루카 복음사가가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꿨다고 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복음서들, 특히 마르코 마태오 루카 세 공관 복음서의 주요 내용이자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의 핵심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마태오복음에서는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마태 12,28)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종말의 표징들이 나타나면 종말에 오실 ‘사람의 아들’이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하고 표현한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고 표현한 루카복음보다 훨씬 사리에 맞게 보입니다. 그런데 왜 루카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지요.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미 시작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행위 그리고 기적적인 행동들은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알리는 표징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믿음의 공동체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종말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종말이 단지 심판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한, 그러나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종말 심판자의 느낌을 주는 ‘사람의 아들’ 대신에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는 표현은 하느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날이 가까웠다는 표현인 셈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두 번째 부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더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21,32-33)는 종말의 표징들이 나타나면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리라는 말씀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단호하게 천명하고 확인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깨어 있어라(21,34-38)
그래서 제자들에게 또 제자들의 공동체에게 요청되는 자세는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21,34) 하는 것입니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젖어 지내는 것은 종말이 가까웠음을,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의 덫에 빠져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덫에 빠져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종말에 완전히 실현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깨어 기도하여야”(22,36)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마지막 활동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묵곤 하셨다. 온 백성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계신 그분께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었다.”(21,37-38)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부터 세상 종말이 오고 하느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실현될 그 날까지를 교회의 시대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마치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 나라도 성장할 것입니다. 종말에 완성될 그 날까지.
우리는 지금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고,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썼을 때에 함께했던 그 신자 공동체는 그 교회 시대의 첫 세대였습니다. 그렇다면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신자 공동체에게 전하려고 했던 그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늘 기쁨에 차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장 속에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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