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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교회의 보물창고

(53) 이스라엘 카파르나움의 ‘성 베드로 성당’

by 세포네 201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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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베드로 사도의 흔적 고스란히 지켜와



오늘날 이스라엘은 여전히 분쟁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유적지와 성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연중 관광객과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러 성지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갈릴레아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Capharnaum)이다. 이 도시는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한때는 상업도시로서 번성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나자렛이었지만 주요 활동 무대는 카파르나움이었다. 이 도시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부 시몬을 첫 번째 제자로 부르시어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셨다. 또한 시몬의 동생 안드레아와 같은 도시에 살던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등 많은 활동을 하셨다.

카파르나움에는 베드로가 살았던 집터와 도시가 유적지로 남아 있다. 베드로의 집으로 알려진 곳에는 현재 아담한 기념 성당이 서 있다.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성당의 바로 아래에는 5세기경에 지어진 팔각형의 성당의 유적이 잘 보존돼 있다. 그 유적지 안에 베드로의 집터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카파르나움 유적지와 ‘성 베드로 성당’.


베드로의 집터에 세워졌던 옛 성당은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어 1200여 년 동안 방치됐다. 1894년 성지 관리의 책임을 맡았던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곳을 매입해 본격적인 발굴을 했고 1990년 오늘날의 간소하면서도 아담한 성당을 건립했다.

성당의 유적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팔각형이었던 옛 성당을 알려주기 위해 같은 팔각형 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의 형태는 교회가 구원의 새날을 선포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교회미술에서 여덟은 새날을 뜻한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은 쉬셨다고 한다. 여덟째 날은 다시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새날의 시작이라고 한다.

유적지 위에 기둥을 세워 1층은 비어두었고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성당이 있다. 제단은 성당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의 집터에 세워진 옛 성당의 흔적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바닥엔 투명한 유리를 깔아서 그 아래에 있는 베드로의 집터와 옛 성당의 유적지를 잘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베드로의 집터와 도시의 유적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성당을 세우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면 마치 그가 살았던 집 안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인 베드로가 살았고 그 집이 가정교회가 됐다. 그 자리에 팔각형 성당이 건립됐고 후에 허물어졌다가 다시 현대식 성당이 들어선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이 감동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던 장소는 지금과 같은 성당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때로는 갈릴레아 호숫가나 카파르나움 어촌에서, 유다인 회당이나 베드로의 집 등 어디든지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복음 선포의 장소가 됐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처음에는 신자들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미사인 성찬례를 거행하고 하느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선포하셨다. 오늘날처럼 성당이 아니라 열심한 신자들의 집에서 성찬례를 거행했는데, 베드로 성당과 주변에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



성 베드로 성당 내부에서 본 베드로 집터 위의 옛 성당 유적지.


카파르나움의 유적지 한곳에는 주변의 흩어져 있던 자재들로 1921년에 복구한 유다인 회당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회당은 예수님 시대의 회당을 기반으로 해 4세기경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그 회당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커다란 현무암과 석회암으로 쌓은 벽과 바닥, 기둥과 장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회당의 기둥 위를 장식한 코린토 양식의 문양만 보아도 이 건물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다인 회당과 베드로 성당 주변 마당에는 여러 석조 유물이 전시돼 있어 회당과 도시가 어떻게 꾸며졌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유물은 무너진 회당의 잔해들인데 곳곳에 잘 보관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무너진 돌덩이들을 쌓아둔 곳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보물처럼 소중한 것이다. 한때는 회당을 장식했던 돌덩이에는 유다교의 종교적 문양인 다윗의 별이나 계약의 궤 등이 새겨져 있고,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생활용품과 도기들도 한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카파르나움의 도시 길이가 1㎞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폐허가 되어 오랜 세월 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러던 중 17세기 중엽부터 20세기 말엽까지 몇 차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폐허로 변한 카파르나움에서 베드로의 집터와 예수님 시대의 회당 위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이루어져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복원된 유다교 회당의 내부 전경.


한국교회의 여러 교구에도 초기 교회 역사와 관련된 여러 유적지와 성지가 많이 있다. 교회에서는 이처럼 소중한 유적지나 성지를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한다. 이런 곳의 원형을 잘 보존하는 것이 언제나 우선돼야 하지만 때로는 많은 순례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경당과 같은 건물을 추가로 지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갈릴레아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의 유적지, 그 곳에 있는 베드로의 집과 그 위에 건립된 성당, 유다교 회당과 야외 전 시장 등은 우리의 유적지나 성지 보존과 개발에 대한 문제 해결에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성지의 원형을 보존하고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그 위에 세운 베드로 성당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회도 유적지나 성지에서 이제 옛것을 잘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조화롭게 만들어 나가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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