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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2월 22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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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Demetrius)

플로로(Florus)

호노라토(Honora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데메트리우스(또는 데메트리오)와 성 호노라투스(Honoratus)는 그리고 성 플로루스(Florus)는 이탈리아의 오스티아(Ost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 중에서 성 데메트리우스와 성 호노라투스는 11월 21일에 기념하는 성 데메트리우스와 성 호노리우스(Honorius)와 동일인물일 수 있다.

 

마리아노 스코투스(Marianus Scotus)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088년

 

   아일랜드 북부 더니골(Donegal)에서 태어난 마리아누스 스코투스(Marianus Scotus, 또는 마리아노)는 미소년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들은 그를 사제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자신은 은수자가 되고 싶어 했다.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는 로마(Rome)를 향하여 아일랜드를 떠났으나, 독일 남부 밤베르크(Bamberg)에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오토 주교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독일어를 몰라서 고생하다가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그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고 자주 성령께 기도드렸는데, 꿈을 통하여 응답이 오기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처음으로 보는 곳에 머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레겐스부르크에 정착하였다. 그가 남긴 사본으로는 성 바오로(Paulus)의 편지가 수록된 것으로 빈(Wien)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담(Adam) (복자)

신분 : 신부, 은수자

연대 : 1210년

지역 : 작세

 

 아담은 작센의 로쿰(Loccum) 수도원의 사제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하였으나 두 번이나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투철하였다. 그에 대한 기록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약을 다 구하더라도 복되신 동정 성모님보다 효과 있는 약은 없다. 땅이 살아 있는 창조물들을 끊임없이 내놓듯이, 마리아께서는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낳으신다.”

 

 

유타(Jutta)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136년

지역 : 디센베르크

 

   그녀는 독일 스팬하임(Spanheim)의 메긴하르트 공작의 자매로서 성 디지보드(Disibod)가 디센베르크 강에 세운 수도원 옆의 조그마한 집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성녀 힐데가르데(Hildegardis, 9월 17일)의 교육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녀 주변에 제자들이 모여들자 20여 년 동안 원장으로서 그들을 지도하였다. 그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은 디센베르크의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이스키리온(Ischyrion)

카이레몬(Chaeremon)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성 카이레몬(Chaeremon)과 성 이스키리온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이집트에서 순교하였다. 이집트 내에 황제의 박해 극심해지자 수많은 교우들이 사막으로 피신하였으나 기아와 맹수들로 인하여 고생은 더욱 심하였고 또 많은 이들은 다시 체포되어 노예로 팔려갔다. 이때 피신했던 동료들 중에서 성 카이레몬은 이미 연세가 높은 닐로폴리스(Nilopolis)의 주교였다. 그는 아라비아의 어느 산으로 들어갔으나 그 후에 그의 행방이 묘연했고 또 시체도 찾을 길 없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는 또 다른 한 명은 성 이스키리온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행정장관 밑에서 일하던 관리였다. 그는 행정장관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제물을 바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갖은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제노(Zeno)

신분 : 구인,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니코메디아

 

  소아시아 지방 니코메디아의 군인이었던 성 제노는 체포되어 로마의 신 케레스(Ceres, 농업의 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요구를 비웃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턱뼈가 깨지는 고문을 받고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플라비아노(Flavian)

신분 : 순교자

연대 : 4세기경

 

   5세기 때 로마(Rome)에 성녀 비비아나(Bibiana, 12월 2일)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콰팡당트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지사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의 딸이었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죽은 뒤에 그의 아내 성녀 다프로사도 참수를 당했고, 그들의 딸인 성녀 비비아나와 동생 성녀 데메트리아(Demetria, 6월 21일) 역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다시 체포되었다. 성녀 데메트리아는 이때 바로 죽었고, 성녀 비비아나는 후에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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