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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2월 18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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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아노(Gatian)

신분 : 주교

연대 : 337년경

지역 : 투르

 

   성 가티아누스(Gatianus, 또는 가시아노)는 3세기 중엽에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와 함께 로마(Rome)에서 프랑스 지방으로 온 6명의 선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주로 투르 지방에 선교하였고, 첫 주교로서 활약하였다. 약 50년 동안 수많은 난관과 위험을 물리치며 선교활동을 하다가 평화로이 운명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성 베드로(Petrus)가 직접 파견하신 72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도 한다. 그는 간티아누스(Gantianus)로도 불린다.

 

루포(Rufus)

조시모(Zosimus)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연대 : 107년경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17일)가 마케도니아의 필리피(Philippi)에 체류하다가 체포되어 로마(Rome)로 순교의 길을 가던 중에 안티오키아의 시민인 성 루푸스(또는 루포)와 성 조시무스(Zosimus)를 만났다. 성 이냐시오의 지시에 따라 필리피(Philippi)의 그리스도인들은 우호적인 편지를 써서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했는데, 이에 대하여는 스미르나(Smyrna)의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가 회신하였다. 이 편지는 4세기의 아시아 모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낭독되었는데, 그는 이 서한 속에서 성 루푸스와 성 조시무스를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 이냐시오의 쇠사슬을 함께 짊어졌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의 박해 때였으므로 107년경이다.

 

모세(Moses)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지역 :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순교자인 성 모세(Moyses)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그는 때때로 모이세테(Moysetes)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바실리아노(Basilian)

테오시모(Theotim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테오티무스(Theotimus)와 성 바실리아누스(Basilianus, 또는 바실리아노)는 시리아의 라오디케아(Laodicea)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들의 순교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비네발드(Winebald)

 

신분 : 선교사, 수도원장

연대 : 761년

 

   웨식스(Wessex)의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2월 7일) 왕의 두 아들인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와 성 비네발드는 함께 로마(Rome) 순례를 떠났다. 성 비네발드는 병 때문에 로마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7년 동안 공부한 후 잠시 고향에 들렸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수도자가 되었다. 이때 그는 독일 선교단의 책임자인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를 따라 투린지아(Thuringia)로 갔으며, 거기서 사제가 된 후부터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선교를 담당하였다.

   그 후 그는 뷔르템베르크(Wurrttemberg)의 하이덴하임(Heidenheim)으로 가서 이중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채택했고, 만년에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에서 선종하기를 바랐으나 병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빅토르(Victor)

빅토리노(Victorinus)

빅투로(Victurus)

아주토르(Adjutor)

콰르토(Quar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빅투루스(Victurus)와 성 빅토르,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아주토르(Adjutor), 성 콰르투스(Quartus)를 포함한 3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북아프리카에서 함께 순교하였다.

 

심플리치오(Simplicius)

퀸토(Quin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255년

 

   성 퀸투스(Quinctus)와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아욱센시오(Auxentius)

신분 : 주교

연대 : 321년경

지역 : 옵수에스티아

 

   성 아욱센티우스(또는 아욱센시오)는 313년 종교관용에 관한 밀라노(Milano) 칙령을 공동 서명자인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황제의 개인 경호를 맡은 고위 군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쿠스(Bacchus) 신에 대한 우상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군대를 떠났다. 그리고 사제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리시아(Cilicia, 소아시아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 지방 몹수에스티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로마 당국의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교회와 도시를 지킨 보호자 중의 한 명이었다. 언젠가 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형을 받았을 때 그는 기꺼이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그는 황제는 종교적인 문제에 간여할 권리가 없고, 하느님께서 황제에게 준 권력은 제국에 대한 것이며 교회에 대한 권리는 교회에 주어졌다고 주장하였다.

 

플란난(Flannan)

신분 : 주교

연대 : 7세기경?

지역 : 킬릴루

 

  성 플란난은 아일랜드 킬럴루 교구의 첫 번째 주교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킬럴루 수도원의 설립자인 성 몰루아(Molua, 8월 4일)의 제자이자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다가 친척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Rome) 순례를 하였으며, 그곳에서 교황 요한 4세(Joannes IV)로부터 킬럴루 교구의 초대주교로 축성되었다. 그의 선교와 가르침은 특히 그의 부친을 크게 감화시켜 성 콜만누스(Colmannus)의 지도를 받는 수도자가 되게 한 것은 가장 유명한 일화이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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