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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2월 1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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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Natalia)

신분 : 과부, 순교자

연대 : 304년경

지역 : 니코메디아

 

   소아시아 니코메디아의 궁중 관리였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3월 4일)는 일단의 신자 무리들의 인내심과 열렬한 믿음에 감동하여, 비록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는 즉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아내 성녀 나탈리아는 옥중의 남편을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방문객의 면담이 금지되자, 아내는 소년 복장으로 위장하고 관리들을 매수하여 남편의 온갖 고통을 위로하고 신심을 굳게 해 주었다. 그가 죽는 현장에 아내도 참석하여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였다. 한편 성녀 나탈리아는 자신과 강제로 결혼하려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궁중 관리의 손아귀를 벗어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피신하여 여생을 지냈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군인들과 푸주한의 수호성인이다.

 

나훔(Nahum)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연대 : 기원전 7세기

 

   엘코시(Elkosh) 출신의 예언자 성 나훔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남긴 조그마한 예언서밖에 없다. 그나마 이 예언서까지 숱한 주석상의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추정은 그가 유대 출신의 예언자라는 사실 뿐이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유다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시에 유다에 구원을 선포하고 외적의 공략이 없으리라는 보장(2,1)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8에 있는 시편으로 인해 나훔이 '성전(聖殿)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성전의 제 의식(儀式)과 활동에 정통한 예언자로서 성전 주변에 머무르며 자기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나훔서는 주님의 분노를 알리는 알파벳 순서의 '시편 - 예언자의 반성 - 역사적 사건의 회고'라는 도식으로 짜여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 중, 이 찬미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야훼의 지상 통치권을 찬양하였다. 비록 나훔서의 서두에 나오는 이 시편이 예언자 나훔의 생존 당시보다 훨씬 후대에 작시(作詩)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아직 확증할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훔이 직접 이 시편을 작시했거나, 아니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를 인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찬양시를 봉독하며 우주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찬미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주제하는 하느님의 정열과 그분의 선하심과 권능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 할 수가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살들은 하느님이 가지 나라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괴롭히는 이방민족까지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찬미로 시작하는 이 예언자의 반성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를 역사적 현실을 들어 예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하느님은 원수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요 외로운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나 불경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다. 물론 여기서 의인(義人)이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악인이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아시리아인이다. 예언자는 기도문으로 사용된 이 예언서에 풍부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죄악의 도성(都城) 니느웨가 멸망하리라 예고하였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례 때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니느웨의 함락을 목적의 현실처럼 절감하고, 오랜 시일 동안 신앙과 희망을 고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훔서의 저자는 의(義)와 불의(不義)에 대해서 정열적으로 작품을 썼다.

   나훔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을 찬양하자는 외침이다. 예언자가 전례나 설교에서 역사의 하느님을 상기시키는 의도는 현재 생황의 의미를 깨닫고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자의 전갈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든 인류의 '절대 미래'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디오도로(Diodorus) (신부)

마리아노(Marianus) (부제)

신분 : 순교자

연대 : 283년

 

 

   성 디오도루스(또는 디오도로) 신부와 성 마리아누스(Marianus) 부제는 누메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많은 로마(Rome)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은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박해자들이 지하 성당의 입구를 막아버려 순교하게 되었다.

 

랄프 셔윈(Ralph Sherwin)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1년

지역 : 영국

 

   영국 잉글랜드(England) 더비셔(Derbyshire)의 로드슬레이 출신인 성 랄프 셔윈은 옥스퍼드에서 수학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고, 1575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스 두에(Douai)로 가서 사제 수업을 받았다. 그는 1577년에 사제가 된 후에도 로마(Rome)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1580년에 잉글랜드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1580년 8월 1일에 런던에 당도하였으나, 그해 11월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1581년 12월 1일, 에드문두스 캠피온(Edmundus Campion)과 알렉산데르 브리안트와 함께 성 랄프는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로가토(Rogatus)

루치오(Lucius)

카시아노(Cassian)

칸디다(Candida)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싱

 

   이탈리아 로마(Rome)의 순교자인 성 루키우스(Luci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카시아누스(Cassianus) 그리고 성녀 칸디다(Candida)에 대해 알려진 다른 내용은 없다

 

 

리카르도 랭리(Richard Langley)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6년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 랭리는 우즈토르프의 신사로 알려진 분인데, 그의 저택에서 사제들을 보호했다는 죄목으로 요크(York)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아나니야(Anania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아르벨라

 

   성 아나니야(또는 아나니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페르시아의 아르벨라 또는 아시리아(Assyria)의 에르벨(Erbel)에서 순교한 평신도이다

 

 

아제리코(Agericus)

신분 : 주교

연대 : 521-588년

지역 : 베르됭

 

   성 아제리쿠스(또는 아제리코)는 프랑스 베르됭의 하르빌 태생으로 그곳의 성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 성당의 성직자로 활약하던 중, 33세 때에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를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는 이곳을 둘러본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와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로부터 탁월한 주교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는 또 국왕 시제베르트 1세와 그의 아들 칠데베르트를 개종시켰고, 그들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성 안드레아(Andreas)와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그는 에어리(Airy)로도 불린다.

 

안사노(Ansan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지역 : 시에나

 

   로마(Rome) 태생인 성 안사누스(또는 안사노)는 시에나의 사도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2세 때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포기하라는 강요와 심지어 당국에 고발까지 하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벗어나 토스카나(Toscana)로 가는 길에 타오르는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특히 그는 시에나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기 때문에 ‘세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투옥된 성 안사누스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참수되어 머리는 성곽 밖으로 내버려졌다고 전해 온다. 1170년에 그의 유해가 대성당에 모셔졌고 때때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안토니오 본파디니(Anthony Bonfadini)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400-1482년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의 좋은 가문 출신인 안토니우스 본파디니(Antonius Bonfadini, 또는 안토니오)는 31세 때에 고향 마을에 있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즉시 뛰어난 설교자이자 교사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성지로 가는 프란치스코회 선교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연만한 나이에 선종하여 로마냐(Romagna)의 코티뇰라(Cotignola)에 묻혔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1년에 승인되었다.

 

알렉산데르 브라이언트(Alexander Bryant)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581년

지역 : 영국

 

   영국 잉글랜드(England) 서머싯(Somerset)에서 태어난 성 알렉산데르 브라이언트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다가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는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두에(Douai)로 갔으며, 1578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그 다음 해에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서머싯에서 맹활약을 하다가 1581년에 런던으로 갔으며, 그곳의 로버트 펄슨 신부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여기서 영국 국교도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선언을 하라는 위협에도 끝까지 견디었다.

   마침내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과 랄프 셔윈(Ralph Sherwin)과 함께 타이번(Tyburn)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에바시오(Evasi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62녀

지역 : 아스티

 

   성 에바시우스(또는 에바시오)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아스티의 초대주교이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의해 주교좌에서 쫓겨나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의 카살레몬페라토(Casale Monferrato)에서 순교하였다.

 

엘리지오(Eligius)

 

신분 : 주교

연대 : 588-660년

지역 : 누아용

 

   엘로이(Eloi)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성 엘리기우스(또는 엘리지오)는 프랑스계 로마인의 아들로서 프랑스의 리모주(Limoges) 근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에우케리우스(Eucherius)는 금속 세공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유명한 금 세공인인 압보(Abbo)에게 아들을 보내어 공부하도록 안배하였다. 압보는 리모주의 조폐국 책임자였다. 그가 도제 수업을 마친 뒤에는 궁중 재무관 봅보(Bobbo) 수하에서 일을 하다가 국왕 클로테르 1세의 조폐국 책임자가 되었다.

   성 엘리기우스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는 한편 국왕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성 엘리기우스의 신심과 끊임없는 설득에 의하여 국왕은 가난한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수많은 노예들의 보석금을 대납하였고 또 여러 교회를 세웠다. 또 632년에 그는 솔리냑(Solignac)에 수도원을 세웠고, 클로테르의 아들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의 도움으로 파리(Paris)에 수도원까지 세우는 등 참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였다. 그래서 국왕은 그를 자신의 주요 고문으로 삼았다.

   또 엘리기우스는 브르타뉴(Bretagne)로 가는 외교사절이 되어 활약한 결과 브르타뉴 국왕을 설득하여 프랑크 왕의 권위를 인정하게끔 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 그는 640년에 서품되어 누아용의 주교가 되었다가 투르네(Tournai)의 주교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중에 안트베르펜(Antwerpen) 지역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금속 세공인, 금 세공인의 수호성인이다.

 

올림피아데(Olympiades)

신분 : 집정관,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로마

 

   성 올림피아데는 로마의 집정관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신앙을 지키다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아멜리아(Amelia)에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요한(John)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205-1288년

지역 ; 베르첼리

 

   요한(Joannes)은 40세 때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도미니코회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부터 그의 탁월한 능력이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러 직책을 거쳐 1264년에 선교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어 19년 동안 눈부신 활동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편지나 공문서에서 ‘가난한 작은 사람’으로 자신을 묘사하고 수도자들을 항상 동료로 부를 만큼 겸손하였다. 리옹 공의회(Council of Lyon)에서 그는 히에로니무스 디 아스콜리(Hieronymus di Ascoli)를 만났는데,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을 역임했던 그 당시의 고위 성직자였다.

   또한 그는 예수 성명에 대한 뛰어난 신심을 전파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는 그를 지원하여 이 신심의 보급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는 모든 도미니코회 성당에는 예수 성명 제대를 꾸미도록 하였고,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의 학식을 반박하는 사람들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자기 회원들을 영국으로 파견한 적이 있다.

 

우르시치노(Ursicinus)

신분 : 주교

연대 : 347년

지역 : 브레시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인 성 우르시키누스(또는 우르시치노)는 347년 사르디카(Sardica)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아리우스파(Arianism) 이단의 반대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해는 지금도 브레시아에 모셔져 있다.

 

카스트리시아노(Castritian)

신분 : 주교

연대 : 137년

지역 : 밀라노

 

   성 카스트리티아누스(Castritianus, 또는 카스트리시아노)는 성 칼리메리우스(Calimerius, 7월 31일) 주교의 전임자로서 42년간 이탈리아의 밀라노 교구를 돌보았다.

 

투드발(Tudwal)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경

지역 : 트레귀에

 

   성 투드발은 웨일스(Wales) 지방에서 온 브리턴인(Britons)으로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으로 건너갔다. 그곳의 둠노니아(Dumnonia) 왕인 데록이 그의 사촌이었던 때문이다. 그는 레옹(Leon)의 파뷔에 정착하여 수도원을 세웠고, 그 후 파리(Paris)로 가서 트레귀에의 초대주교가 된 후 트레귀에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그리고 그가 레오(Leo)라는 이름의 교황이었다는 말은 전설이지 사실은 아닌 듯하다.

 

프로쿨로(Procul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542년

지역 : 나르니

 

  이탈리아의 나르니 또는 테르니(Terni)의 주교인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는 동고트의 왕 토틸라(Totila)의 명령에 의해 살해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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